이철환씨의 2004년 작품 중, 5년 만에 100쇄를 거듭한 대 히트작이 있습니다. 바로 연탄길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는 아주 인상 깊은 글이 있었습니다. 내용인즉, 잠자리 한 마리가 가만히 풀 위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데, 한 아이가 살금 살금 다가와 있는 힘껏 잠자리채를 휘둘렀습니다. 바람 갈라지는 소리에 잠자리는 날개를 폈습니다.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잠자리가 아이를 향해 말했습니다. "나에게 날개가 없었다면 어린 너한테 잡힐 뻔했구나."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잠자리는 온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아이에게 말을 하다가 그만 거미줄에 걸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파르르 날개를 떨고 있는 잠자리를 보며, 거미가 말했습니다. "너에게 날개가 없었다면, 이렇게 거미줄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움직여 봐야 소용 없어, 움직일수록 더 조여들 뿐이니까." 거미는 이렇게 말하고 재빠른 동작으로 잠자리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순간, 산새 한 마리가 허공을 가르며 총알처럼 날아왔습니다. 산새는 표적처럼 박혀 있던 거미를 낚아채듯 물고 갔습니다. 그리고 신음하는 거미에게 산새가 말했습니다. "거미야 미안해. 네가 몸을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만 않았어도 나는 너를 보지 못했을 거야."
위의 이야기는 한 가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무엇인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날개가 있어 잠자리는 좋았지만, 그 날개 때문에 거미줄에 걸렸고, 거미줄로 잠자리를 잡은 거미는 거미줄에서의 빠른 몸놀림 때문에 산새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날개가 잠자리에게, 거미줄이 거미에게 넉넉함을 주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 사람들도 무엇을 소유하고 있음이 넉넉함을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지갑에 허락되었던 돈 만큼만 차에 주유하던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풀 탱크를 채울 수 있게 되면, 왠지 가슴이 뿌듯해졌던 때 말입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왠지 차에 휘발유가 가득하면 마음이 넉넉해지면서 먼 거리도 걱정 없이 달렸습니다. 오렌지 빛 휘발유 아이콘에 불이 뜰 때와는 완전 달랐지요. 남자들에게 지갑이란 그런 유사한 면모가 있습니다. 왠지 두둑한 지갑이 있으면 당당하게 친구도 만나고 여러 가지 활동도 하지만, 지갑이 날씬해질수록 만남도 꺼려지게 되지요. 그래서 우리 사람들은 기름통을 풀 탱크로 만들려는 듯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두둑한 지갑을 가지려고 하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두둑함이 곧 넉넉함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이 가지게 된다고 마음이 넓어져 관대해지거나, 많은 사람들을 품에 안을 수 있는 포용력이 자동으로 생기지는 안았다는 말입니다. 어떤 자칭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니 어떤가요? 미국이라는 땅에 맨주먹으로 와서 일가를 세우고 사업을 지킨 것을 이야기하지요. 허나 세월을 두고 반복적으로 보니, 그는 그런 어려움을 헤쳐나간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에 바쁘지 않던가요? 또 이제 시작하거나 한참 노력 중인 사람들을 아래로 깔아보고 무시하기에 정신이 없지 않던가요? 가끔 이런 이들을 만나게 되면, 두둑해지기는 했는데 정작 아무것도 베풀지 못한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넉넉함이란 두둑함에서 오지는 않습니다. 넉넉함은 무엇을 가졌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날개가 있어도 거미줄에 걸리는 것처럼, 돈이란 것이 있어도 그 돈 때문에 사람 망가지고 인간관계가 무너져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 된 이들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넉넉함은 몇 몇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란 말이 되겠지요.
넉넉함은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넉넉하면, 가진 것이 없어도 베풀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나누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천금을 가졌어도 나누어줄 여유가 없는 사람은 가난한 자이지만, 아무리 일전밖에 없는 사람이라도 나누어 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넉넉한 부자입니다. 그래서 넉넉함은 무엇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아무것도 없어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넉넉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의 주인만 된다면 말이지요. 내 마음이 여유를 갖기만 한다면, 나는 아무런 소유가 없어도 넉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서 욕심을 비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그리고 선한 것으로 가득 채우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정이나 사랑같은 것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필요할 때에 그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초코파이라는 회사가 "정"을 표방하면서 만든 광고가 생각이 납니다. 한 십대의 여학생이 병원에 입원한 채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고 있옸습니다. 자신이 가진 질병 때문에 삭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참 외모에 관심 많을 이 아이에게는 자기의 병보다 머리카락 없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는 것이 더 큰 아픔이었습니다. 그 때, "똑, 똑" 누군가 문병을 왔습니다. 입원실 문을 열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습니다. 자기 학교 단짝 친구였습니다. 친구는 그날 따라 평소에는 잘 즐겨쓰지 않는 털모자를 쓰고 왔습니다. 그 때, 단짝 친구가 자기의 모자를 벗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다 자른 친구의 머리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질병으로 머리카락을 자를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듣게 된 단짝은 같은 여자 동년배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머리카락을 자르는 아픔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그 머리카락을 자르며 친구의 아픔을 같이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모습을 본 이 여학생은 친구를 끌어 안으며 같이 우정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떤가요? 이 두 친구 사이에는 넉넉한 우정이 있습니다. 넉넉한 관계란 무엇이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미문이라는 곳에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구걸을 하고 사는 사람이었지요. 그가 베드로라고 하는 예수님의 제자에게 구걸을 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에게는 돈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에게는 그저 불쌍하게 남을 의존해 살아가는 한 연약한 사람이 보였을 뿐입니다. 그는 그렇게 두둑하지는 않았지만 가진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주님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진 것은 없어도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금과 은은 없었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앉은뱅이는 뛰어다녔습니다. 평소에 누리지 못한 기쁨과 즐거움을 한 가득 표현했습니다. 그에게 장애 때문에 잃어버렸던 넉넉함이 예수님이란 분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미문의 앉은뱅이는 새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지요. 성경은 이렇게 축복을 말할 때, 복 받는 것만 말하지 않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말합니다. 즉 복 받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들은 어쩌면 너무 빈곤하게 살고 있습니다. 물질이 없어서가 아니라 넉넉함이 없어서입니다. 그러나 보니 여유도 없고, 미소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두둑함으로 그 빈곤을 채우려 하다 보니 넉넉함은 찾아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 넉넉했으면 합니다. 마음이 풍성해 짐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두둑하지 않아도 충분히 넉넉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랑을 채워 보세요.
글쓴이: 박성준 목사, 달라스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TX
올린날: 2013년 11월 19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