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지 두 주가 지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 와서 살면서 시간이 지나며 어색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사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동네를 매일 걷고 달리면서 새로운 지역에서 사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어쩌다 보니 여기서 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왜 하필 이 동네 그리고 이 집에 와서 이때에 살게 되었을까" 라고 물으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은 몰라도 먼 훗날 이곳에서 산 순간을 회상하며 비로소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살았던 곳들을 떠올려보면 어떤 곳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았던 곳도 있다. 태어난 집부터 시작해서 부모가 선택한 곳에서 살았던 경우도 여러 번 있다. 그 때 내가 그곳에 살았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지 누가 알겠는가? 왜 갑자기 사는 곳에서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일까? 지금까지 살았던 곳은 바꿀 수도 없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 사는 곳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어제는 새로 살게 된 동네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 집 부근에 있는 간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직도 하는 지 모르지만 FM 과 AM 방송 간판을 보았다. 이런 소도시에서 방송 사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업자가 이윤을 전혀 추구하지 않고 주민들의 유익만을 위해 그런 사업을 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방송을 애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방송에 대한 열정이 많음이 틀림없고 주민들에게 방송을 통한 유익을 주고 싶어 시작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 이사 온 사람이 지역사회를 위한 대단한 꿈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새삼스럽게 한 동네에 주민이 된 이상 살다 간 좋은 흔적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런 생각을 전에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나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네나 단체는 주민들과 단체에 속한 사람들에 의하여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내가 속한 곳이 어디이든지 간에 내가 유익이 된다면 바로 그것이 내 삶의 흔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3년 전 보스턴 지역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새로 섬길 공동체에 대한 소명은 분명했지만 지역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이사 오기 두 주 전에 가까스로 구한 아파트가 로렌스에 있었다. 이사 오기 전에는 로렌스가 어떤 동네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후 내 마음속에 로렌스에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말하고 생각할 때 우리 공동체 교우들은 로렌스에 사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일을 시작했고 학생들도 참여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제 내가 사는 동네는 메쓔언이다.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은 뭔지 모르겠지만 할 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살다간 후에 어떤 흔적이 남을 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나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에는 새로운 곳에 이사 가도 차차 알아지겠지 생각하고 동네에 대하여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네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기도도 했다. 내가 할 일을 보여 달라고 말이다.

신앙공동체를 섬기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분은 한 공동체를 수십 년 동안 섬기는 분이 있는가 하면 잠시 머물다가 가시는 분들도 있다. 떠난 후에 보면 어떤 분은 떠난 후의 공간이 아주 크게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은 떠난 후에도 아무런 차이도 느껴지지 않는다. 신앙공동체가 그 분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인 삶의 태도라고 한다면 세상을 떠난 후에 삶의 흔적이 남을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는 이 땅에 와서 33년 동안 머물다 갔다. 3년 동안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다 갔다. 그가 떠난 지 2천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분의 삶과 가르침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를 만난 사울(후에 바울로 바뀜)의 삶도 많이 변했다. 자신만 변한 것이 아니라 지난 2천년 동안 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의 삶이 크게 달라졌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는 성공적인 삶을 이렇게 정의했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인해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갑자기 다른 사람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매일 자기가 사는 곳에서 어제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면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이 이 세상에 남을 것이다. 나도 삶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고 싶다.

글쓴이: 김용환 목사, 북부보스턴한인교회 MA
올린날: 2013년 7월 1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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