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enity Now (存在 존재의 지긋함)

오래 전 신학교를 졸업하고 멋진 목회의 꿈에 부풀어 있던 나에게 나의 스승께서는 "배운 것이 없는데 왜 남을 가르치려 하느냐? 공부 더 해라."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주 그분이 던져 주는 책 한 권을 읽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년 만에 일곱 대학 캠퍼스를 다니며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어느 날 나를 부르시더니 "네 열쇠 꾸러미를 보니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왠 열쇠가 그리 많나? 꼭 필요한 열쇠는 하나 뿐이다."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야단맞지 않으려고 다른 열쇠들은 자동차에 놔두고 한두 개만 열쇠꾸러미에 넣고 다녔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저와 관련된 내용의 글을 신문에 쓰셨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스승님께 "목사님, 신문에 저와 관련된 글이 실렸는데 제게 불리한지 유리한지 감을 잡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이 "이놈아 젊은 놈이 왜 유리와 불리에 관심을 가지냐? 진리만 생각해라."였습니다. 여하튼 그 분 앞에서 나는 입만 열면 야단맞는 말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를 사람 만드시려고 하신 것인데 나는 고마운 줄 몰랐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날 하산 명령을 받고 산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한 3년 부목사로 있었는데 어느 날 다음 주일부터 안 와도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첫 스승으로 모셨던 목사님을 찾아 뵙고 두 번째 스승 목사님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저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너는 아직 그 사람을 평가할 때가 아니다. 더 공부한 다음에 평가해라."하셨습니다. 두 분은 신학교 동기이며 친한 친구셨습니다. 사실 아직도 하산 명령 이후 그 어른을 다시 찾아 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공부가 덜 되었다는 두려움인지 모릅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가끔 옛 스승들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요즘 떠오르는 가르침은 "존재의 지긋함에 머물라"(serenity now)는 말씀과 'Non-Doing'입니다. 뭘 한다고 소리 내며 하지 말라는 것이고 하지 않음으로도 큰 일을 하는 성숙에 이르라는 가르침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것도 그 어떤 행함보다 큰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껍데기 행함과 거짓된 경건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기도도 그렇고 선한 일도 남들 보이게 하지 말라 하셨고 주고 받는 계산이 불가능한 가난한 자들 작은 자들에게 잘하라 하셨습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현대인의 죄를 조급함과 시끄러움과 분주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쌩땍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나 볼 수 있다고 고마워하는 '별나라'를 생각해 봅니다. 같은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감사와 기쁨을 찾아내고 어떤 사람은 끊임 없이 불만이 많고 속에서 보채는 소리가 넘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예수님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셨습니다. 그 진리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쉼이 필요합니다. 쉼이 가능 하려면 내 것으로 꽉 차 있는 내 삶의 영역들을 성령의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고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문득 제 방에 걸려 있는 예수님 십자가들을 보니 모두 힘이 다 빠져버린 그래서 육신은 껍데기만 남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예수님의 감은 눈과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을 내어놓은 모습에서 나를 끌어들이는 강한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를 철저하게 죽이심으로 나를 살리시고 비우심으로 나를 품어주시는 신비한 에너지가 전해집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는데 어렵습니다. 요즘 특별히 셀리더 훈련의 성구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소리 내어 외치면서도 실제 내 삶은 말씀과 거리가 멉니다. 작가 최인호가 암에 걸려 큰 수술을 하고 투병하면서 쓴 '최인호의 인생'에서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과거는 주님의 자비에 맡기고, 현재는 주님의 사랑에 맡기고, 내일은 주님의 섭리에 맡겨라. 우리의 의지로 헤엄치려 하지 말고 온전히 주님의 자비와 사랑과 섭리에 맡기면 주님의 파도가 우리를 신대륙으로 이끌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이르게 할 것입니다."(54쪽)

지금도 왜 내가 하산명령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가르쳐 줄 것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고 가르칠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어서도 아닐 것 같습니다. 배움을 고마워 할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자와 스승의 관계에서 넘어서지 말아야 할 도전을 제가 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감히 제가 스승께 "진리는 삶에서 검증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와 "진정한 자유는 평범한 삶에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냥 10년 정도 묵묵히 배웠어야 했는데 아는 체를 하고 스승을 평가하려고 한 잘못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그 분 밑에서 쫓겨난 것이 목회를 위해서 잘된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판단의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그 어른에 대한 고마움은 분명합니다.

글쓴이: 김정호 목사, 아틀란타한인교회 GA
올린날: 2013년 8월 15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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