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와 Asbury를 기리며…

225년 전 존 웨슬리가 사망한 이후, Francis Asbury는 그의 일기에서 “하나님의 교회와 그의 죽음에 지속되는 세상의 손실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고는” 감리교회 창시자의 글들을 아마 다시는 읽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나서 미국의 감리교 창시자 감독인 Asbury는 버지니아의 파송을 위해 말을 타고 여정을 계속했다. 그는 25년 후인 1816년 3월 31일에 사망하기 전까지 수행하여야 할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감리교회 역사보존위원회는 이 두 기념일을 맞으며, 금년이 200주년인 Asbury 사망에 중점을 둔다고 위원회 총무인 Alfred Day 목사는 적었다.

3월 2일 연합감리교회 역사보존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는 “연합감리교회 연감”이란 주제로 웨슬리의 일생의 하이라이트에 관한 간단한 이야기를 개제했다.

“Francis Asbury와 미국 감리교의 틀”이라는 명칭의 전시회는 3월 7일부터 4월 30일까지 드류 대학교(Madison, NJ)에 있는 연합감리교회 역사보존위원회에서 열린다. 전시회는 또한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게 된다.

위원회는 개체교회들이 “미국 감리교회의 개척자와 설계자”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다운로드 가능한 Asbury 관련 리소스를 이번 달 말경에 제공할 예정이다.

일기 속의 회상

장례 예술로서의 죽음 가면

1791년 3월 2일 사망한 존 웨슬리의 이 죽음 가면은 보기 드문 가면의 복사본으로 1890년에 드류 신학대학교에 기증되었다.

죽음 가면은 18세기와 19세기 초의 “소위 우리가 말하는 장례 예술 중의 한 부분”이었다고 연합감리교회 기록보관 담당자인 L. Dale Patterson은 말했다. “영국의 모든 왕으로부터 도살업자, 제빵사,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음 가면이 있을 것입니다.”

이 가면은 보통 사람이 죽은 지 몇 시간 내에 만들어지고 예술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존 웨슬리의 온화한 표정은 “이렇게 만들어진 거의 모든 가면이 죽음 가면의 틀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신뢰할만한 한 사람에 의해 1890년 드류 신학대학교에 기증된 이 가면은 얼굴의 모든 잔주름까지 찾아볼 수 있다. “만일 이 가면이 진품이 아니라면 아마도 가장 초기의 복사본일 것이라고 저는 추정합니다,”라고 Patterson은 말했다.

드류 신학대학교의 잔 웨슬리의 죽음 가면은 복사본으로 만들어져 여러 기관으로 배포되었다. 이들 복사본 중 하나가 이번 연합감리교회 역사보존위원회에서 전시된다고 그는 적었다. 진품은 안전한 곳에서 보관되고 있다.

1791년 3월 2일 웨슬리가 “64년 간의 설교 후 88세의 나이로 런던에 있는 그의 집에서” 생을 마감한 후에도, Asbury는 거의 두 달 후인 4월 29일까지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Asbury의 일기에는 웨슬리의 칭송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그의 슬퍼하고 초조한 글을 생각할 때; 그의 평범하지 않은 설교와 일기를 쓰는 재능; 발랄한 생기의 안정된 흐름과 같은; 그의 안에 있는 많은 다스리는 정신; 관찰자로서의 그의 지식; 학자로서의 소양; 기독교인으로서의 그의 경험을 고려해 볼 때; 자라난 모든 아들 중에서 아무도 그와 동등할 수 없고, 그의 위대함은 아담의 자손들 중에서 으뜸이라 나는 결론짓습니다.”

위원회의 기록보관 담당자이며 Asbury 전시회 책임자인 L. Dale Patterson은 미국내 웨슬리의 대표자인 그가 그 소식에 대한 그의 반응을 기록했다는 것에 대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웨슬리는 모든 그의 감리교 설교자들에게 일기 쓰기를 권면했습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일기는 설교자들이 그들의 사역을 기록하고, 신앙을 돌아보며,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들에 관해 적어놓는 데 도움을 주었다. 웨슬리는 그는 일기를 정기적으로 인쇄했으나, Asbury는 일부 선택 부분만 인쇄했다고 Patterson은 말했다. 전체일기는 그의 사망 이후에 인쇄되었다.

Asbury가 정기적으로 글을 썼으므로 그의 여정은 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는 여러모로 작은 자서전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라고 Patterson은 말했다. 1950년 중반에 인쇄되어 그의 가장 유명한 편지와 한 세트로 만들어진 학문적 주석의 Asbury의 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Asbury에 대한 핵심 정보”를 담고 있다.

전시회 알림에서 지적한 그 정보에는 “처음 100년 동안 미국 감리교의 틀을 세웠던” 사람의 “차분한 불굴의 결의”를 보여준다. 전시회는 Asbury의 배경과 지도력 그리고 순회 제도와 감리교회 연회, 그리고 감독제도에 끼친 영향에 대해 강조한다.

기일을 기념하며

유명한 사람들의 생일이 기억되는 오늘날에 비해 18세기와 19세기 초기에는 누구의 기일을 기념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것이었다.

“웨슬리 사망 후, 그에 관한 몇몇 초기 예술 작품은 – 오늘날로 얘기하자면 마치 살아 있다고 할 정도로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웨슬리를 천국으로 이끄는 다른 작품들도 있습니다.” 라고 Patterson은 말했다.

그는 나중에 웨슬리가 감리교 운동을 시작한 젊은 전도자로 묘사되는 대신, 불타는 목사관저에서 구해지는 어린아이로 묘사되었다고 덧붙였다.

웨슬리가 사망했을 때 20년 동안 미국에서 살았던 Asbury는 그의 감리교 임무를 수행하고, 겨울에는 남부 지방에서, 봄에는 북부로 가고, 여름에는 뉴잉글랜드에 다다르는 (Patterson의 정의에 따르면) “대형 순회”를 계속했다. 그는 1816년 3월 31일 한 연회에 참석하러 가는 도중에 사망했다.

글쓴이: Linda Bloom | 연합감리교회 뉴스서비스newsdesk@umcom.org NEW YORK (UMNS)
올린날: 2016년 3월 9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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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목소리, 한 믿음(Many Voices, One Faith)’은 연합감리교회 내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한 신학적 관점을 공유하고, 오늘날 연합감리교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를 돕기 위한 포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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