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는 "담금질"과 "벼름질"의 과정을 통해 길들여집니다. 담금질은 쇠의 재질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쇠를 뜨거운 불에 가열해서 갑자기 물이나 기름 속에 담가 냉각을 시킵니다. 그러면 뜨거울 때 팽창된 쇠의 조직이 붕괴되지 않고 그대로 굳으면서 강도가 세어집니다. 담금질을 반복하면 할수록 쇠의 강도가 더 높아집니다. 하지만, 달구어진 쇠를 담금질 없이 그냥 천천히 식히면 쇠의 조직도 함께 변질되면서 연철이 되고 맙니다. 부드럽고 연한 쇠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 낫이나 곡괭이 그리고 삽 같은 농기구는 단단한 강철이 아니면 만들 수 없습니다. 아무 때나 휘어지고 뭉그러지는 쇠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담금질을 무조건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쇠가 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쇠를 강하게 만드는 "마르텐사이트 조직"이 담금질을 할 때마다 경화되는데, 잘못하면 쇠가 유리처럼 쉽게 깨어집니다. 담금질도 쇠의 성질에 따라 적절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쇠를 뜨거운 불 속에 넣었다가 갑자기 차가운 물속에 담그면 온도의 차이 때문에 쇠가 일그러지면서 변형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담금질을 한 후에는 반드시 휘어지고 일그러진 쇠를 다시 골고루 펴주는 "벼름질"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쇠의 원형을 유지하고 제품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담금질"과 "벼름질"을 통해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해 갑니다. 뜨거운 불 속에 수도 없이 들어갔다 나오는 "고난의 담금질"을 당하면서 모나고 각진 성격도 원만해지고, 자신의 한계도 아는 겸손한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담금질을 너무 많이 경험하면 지나치게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됩니다. 자칫, 본연의 소중한 자아상도 잃어버리고 소심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벼름질"을 통해 잔뜩 일그러진 "내면의 슬픈 모습"을 골고루 다독여 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꾼들을 세우실 때, 처음부터 완전한 모습으로 부르신 적이 없습니다. 바알 선지자들과 "갈멜산"에서 대결을 벌여 위대한 승리를 거둔 대 예언자 "엘리야"도 브엘세바 광야의 "로뎀나무" 밑에서 절망과 실의에 빠져 죽기를 구하는 연약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대 사도 "바울"도 아라비아 광야에서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보냈고, 그 후로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을_ 받았습니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에서 절망의 사십 년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갈릴리로 낙향하여 어부로 지내는 힘든 시간들을 지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극심한 시련과 고난의 풀무로 "뜨거운 담금질"을 당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따듯한 격려와 위로를 통해 "벼름질"을 받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역자들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다듬어 세우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후계자였던 에베소의 디모데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조언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답게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을 함께 받으라!"(딤후 2:3) 고난 속에 주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고, 또한 그 길에 승리가 있음을 바울은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앞에도 많은 고난과 연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에 담금질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더욱 더 강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어깨를 따뜻하게 토닥여주시는 주님의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따뜻함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김세환 목사, LA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2년 10월 1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