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오는 화요일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게 될지, 아니면 미국 상위 1%의 재력을 가진 롬니 후보가 새로운 대통령이 될지, 그 결과가 매우 궁금합니다. 첫 번째 TV 토론에서 고전한 후에 두 후보는 박빙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결과를 점칠 수 없습니다. 조지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었을 때처럼, 누군가가 전체 투표에서는 이기고 대의원수에서는 지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합니다.

4년 전,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미국 역사에 있어서 거대한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만일 롬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또 다른 면에서 역사의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라고도 불리는 몰몬교는 정통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지난 세월 동안 지속적인 박해를 받았습니다. 케네디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과연 카톨릭 교도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라고 의아해 했는데, 이제는 몰몬교도가 대통령에 당선될지 모르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비록 그가 당선되지 않는다 해도, 롬니 현상은 확실히 미국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국을 기독교적인 국가라고 부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네거티브 선전'이 많았다는 느낌입니다. 저는 주로 저녁 식사 시간에 뉴스를 보는데, 뉴스 중간 중간에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선전이 이어졌습니다. 그 선전의 대부분은 네거티브 광고였습니다. 오바마 측에서 낸 광고는 주로 롬니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고, 롬니 측에서 낸 광고에는 주로 오바마의 실정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졌습니다. 최근에는 그 선전을 보고 싶지 않아서 아예 뉴스를 인터넷으로 따라잡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요즈음 저는 민주주의에 대해 큰 회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 즉 국민이 주인으로 대접받는다는 정신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과연 민주주의의 이념 그대로 국민이 주인으로 대접받고 있는지, 혹은 국민이 주인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으로 결정되기보다는 돈의 힘으로 혹은 정치 전략가들의 전략으로 결정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겉으로는 국민을 주인처럼 대접하면서 교묘하게 국민들의 마음을 조종하여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회의감으로 인해 시간을 내어 투표장에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다만, 그래도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이유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믿음이 없다면, 저는 정치적 방관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실수와 악행까지도 결국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이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역사(history)는 과연 주님의 이야기(His Story)입니다.

글쓴이: 김영봉 목사, 와싱톤한인교회 VA
올린날: 2012년 11월 5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관련

선교
정희수 감독이 샌디에고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한인목회강화협의회 2018년차 회의 개회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다. Photo by Thomas Kim, UMNS

가라 하신 깊은 곳

"깊은 곳, 그곳은 두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길입니다.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길입니다. 그동안 알았던 모든 공식이 통하지 않는 변혁적인 도전 앞에서 주님은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정희수 감독의 한목협 2018년 연차회의 개회예배 설교전문.
사회적 관심
백두산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두손을 잡았다. KBS 화면 캡쳐

우리 시대에 평화? 한국의 진전을 축하하며

위스콘신 연회의 정희수 감독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다. "Peace in Our Time" by Bishop Jung in English and Korean.
사회적 관심
Goodbye-reunion at Mt. Diamond in N. Korea in 2018. MBC TV screen capture.

희망의 시작 '작별 상봉(作別 相逢)'

'180초짜리 만남'이나 '작별 상봉'은 헤어짐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을 알리는 만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