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동창을 만났습니다. 본래, 품행이 방정맞고, 타의 모범이 전혀 안되는 건달이었기 때문에 학창시절에도 제쳐놓은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거의 35년 만에 다시 만나니 남북 이산가족을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다가 뭘 하면서 지내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갑자가 거룩한 목소리로 "목사가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처음에는 "목수"를 한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와 동일업종에 종사하는 "동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국에서 1,500여 명 되는 교회의 담임목사랍니다. 집회를 인도하려고 미국에 들어왔답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납니다. 학창시절의 그 놈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푸념이 튀어나왔습니다; "이런 젠장, 지나 새나 다 목사!" 본인도 켕기는 것이 있었는지, "자기는 사람 구실하기 어려운 인간이었는데, 하나님으 크신 은혜와 축복으로 목사가 되었다"고 미리 꽁지를 내립니다. 품위 있는 그의 모습에 웬만하면 동료의식을 느껴보려고 했는데, 어렸을 때의 영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 친구가 목사라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오만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즘에는 지나 새나 다 목사가 됩니다. 연예인으로 단물 다 짜먹다가 더이상 할 것이 없으면 목사로 변신합니다. 개그맨, 탤런트, 가수, 사업가, 부동산업자, 소매치기, 강간범, 살인자, 그리고 심지어는 군사정권 밑에서 민주 인사들을 고문하더 고문전문가들까지 죄다 목사가 됩니다. 그것도 정규과정이 아니라, 1-2년 만에 "속성신학교," "번갯불과"를 졸업하고 목사가 됩니다. "꿩 잡는 것이 매"라고 좋은 건물과 많은 교인들만 확보하며 모든 과거가 정당화되고, 무지한 교인들로부터 "능력의 종"이라는 기사 칭호까지 부여받습니다. 짜증이 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딴 생각을 하려고 라디오를 켰는데, 더 짜증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 방송에서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때마침 읽던 성경구절이 "요나야, 너와 상관없는 박넝쿨로 인하여 네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요나 4:9)이었습니다. 제대로 걸린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언제나 불공평하세요!" 따지고 싶었는데, 하나님은 이미 저의 교만을 간파하시고, 라디오를 통해 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변하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부족한 사람들을 들어 강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계획은 처음부터 "내"가 아니라, "그"였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나는 그를 비난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그를 위해 해준 것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더 겸손해지고 연단되 그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도 바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고보니, "지나 새나 다 목사가 된다"고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바로 저였습니다. 그냥 조용히 "내가 할 일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뒤늦은 후회가 엄습했습니다. 아직도 깨져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답답한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아픈 기회"였습니다.
글쓴이: 김세환 목사, LA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2년 9월 2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