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 요리하면 제일 먼저 떠 올리는 것이 짜장면 아니면 짬뽕입니다. 나무젓가락을 양쪽으로 쪼개 한 손에 한 개씩 붙잡고, 짜장이 덥혀 있는 면을 휘휘 저으며 비벼먹는 맛은 한국에서 경험해본 세대들에겐 로망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다가 여기에 조금 매콤한 국물을 먹고 싶다면, 특별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엔 조개와 오징어, 새우 등이 듬뿍 들어간 짬뽕이 제격입니다. 그래서 중화 요리집에 가면 항상 이 두 메뉴 중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게 되곤 합니다.
근래에 이 갈등을 한방에 해결해 준 아이템이 생겼으니 바로 짬짜면입니다. 한 그릇이 반으로 나누어져서 한쪽에 짜장면을 다른 쪽에 짬뽕을 넣어 줌으로써 소비자로 하여금 무엇을 선택할지 갈등하지 않고, 두 가지를 다 맛볼 수 있도록 한 메뉴입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필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찾아 들어간 아이템이라 할 수 있지요. 이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 바로 치킨류에서는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겠습니다. 매콤한 소스 맛을 느낄 수 있는 양념치킨과 튀긴 통닭의 정통의 맛인 후라이드를 모두 맛 볼 수 있도록 한 기발한 틈새 시장 품목입니다.
이런 메뉴들을 보게 될 때,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은 참신한 아이디어 메뉴다라는 생각과 함께 다른 한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심지어 음식 조차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대를 보여주고 있구나" 라고 말입니다. 필자가 본 우리 세대는 모두가 다 똑같이 공감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한 번 같이 생각해 보면 좋을 대목이라 사려되어 한두 자 적어 봅니다.
흔히 학자들이 "포스트 모던"이라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복합하고 철학적인 단어들은 다 던져 버리고, 한 가지 명확하게 보이는 이 세대의 특성은 심층에 깊이 담겨 있는 의미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요. 과거, 예를 들어 음악이라 한다면, 신묘한 음악성과 그 음률과 음간에 담겨 있는 뜻을 알고자 했고, 심연에 있던 것을 발견할 때에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은 어떤 가요? 물론 여전히 그런 숨은 의미를 추구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다수 일단 흥이 나고 신이 나는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즉 음이 가지고 있는 숨은 의미가 아니라, 음이 드러내고 있는 표면에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표면에 흐르는 것들이 즐겁고 매력적일 때, 깊은 호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비주얼(visual) 비주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단적인 또 다른 예로, 영화계는 아예 예술성 영화와 상업성 영화로 나눕니다. 깊이와 의미를 추구하는 영화의 가치는 인정하면서도 많은 대중을 사로 잡고 있는 것은 사람들을 자극하는 요소들로 끌어들이는 상업성 영화라는 것입니다.
짬짜면. 그렇습니다. 한 가지 음식의 맛을 깊이 느끼기에는 적합한 맛이라고 볼 수 없지요. 그냥 그 때 그 때 당기는 대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맛의 깊이 추구'라는 구시대적 발상을 압도한 것입니다. 짜장면/짬뽕으로 맛의 깊이를 운운하는 것도 우스운 얘기입니다만, 쉽게 말하자면 그 메뉴는 음식의 맛을 찾는 메뉴가 아니라, 짜장의 맛과 짬뽕의 맛 모두를 그냥 두 가지 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구를 해결에 초점을 맞춘 메뉴라는 것입니다. 음식의 맛을 위한 메뉴가 아닌 그 때 그 때의 표면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메뉴가 통하게 되었단 말입니다. 필자도 맛의 깊이는 모를지언정, 둘 다 먹으니 참 좋더군요.
이렇듯 우리 세대의 문화는 표면적인 즐거움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정에도 더욱 더 솔직해 졌습니다. 숨기고 참다가 화병들 던 것은 옛날 구시대적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먼 미래를 향한 계획을 위한 인내라는 것도 당장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현재 이런 표면적인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심층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 많이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변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니 여전히 바뀌기 힘든 아니 바뀌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가치들이 있는데, 그런 가치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라는 가치는 표면적이고 순간적인 것이 전부가 아니지 않을까요? 가족은 그저 즐겁기 때문에 같이 있고 재미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한 남녀가 사랑으로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두게 될 때는, 그저 자기들만 즐겁고 좋아서 혹은 상대로부터 이득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자녀들을 향한 사랑 있고, 배우자를 향한 배려와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랑은 때로 희생을 요구하고, 그 배려는 때로 헌신을 요구합니다. 그런 희생과 헌신은 겉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매력적이지도, 즐거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그런 가치들을 지켜야만 하는 훌륭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세대가 때로 이런 깊이의 일들에 관심을 적게 두다 보니, 정말 지켜야 하는 것들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무너져 가고 있는 가정에 대한 생각들, 가벼워 지고 있는 사랑의 개념들, 헌신과 희생이란 것이 완전히 배제된 이기적인 향락 추구적인 행복의 개념들이 우리들을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음식 가지고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조금 우스꽝스럽긴 합니다만, 음식문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들이 반영되고 있는 것 같아 그저 이렇게 잠시나마 진지하게 살며 생각해 봅니다.
글쓴이: 박성준 목사,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 TX
올린날: 2013년 9월 24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