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執着)과 사랑

준택이와 현지를 보면서 나를 본다. 준택이는 아직도 손이 많이 가고 관심이 필요하지만, 현지는 이제 둥지를 떠나 자기 세계를 찾고 있어 내가 해 줄게 별로 없는 것 같다. 가끔 전화를 해서 확인하는 것 밖에는 이젠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속내는 더더욱 알 수 없다. 내가 사는 세계가 다르고 딸 아이가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아빠가 미팅 와서 네 생각나서 전화했다. 잘 지내지? 돈 아끼지 말고 맛있고 영양 있는 것 먹어!" "알았어 아빠! 아빠 나 지금 바빠. 수업 들으러 가는 중이야! 아 참, 병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데 패스포트가 필요하거든. 언제 갖다 줄 수 있어!""언제까지 필요한데?" "빠를수록 좋아. 토요일은 친구들하고 놀아야 하니까 월요일 날 와!" 물론 편하니까 그러겠지만, 아예 명령이다. 자기 시간에 맞춰서 올라 오란다. 어떤 때는 아예 나를 아이처럼, 자기가 내 엄마인양 군다. 되레 나한테 잔소리다. 지 엄마와 한패가 돼서 나에게 충고도 서슴지 않다. "아빠, 언제 철들레. 아빤 꼭 끼고 싶어 해. 아빤 몰라도 돼."

그래도 목소리 한 번 들려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맙나. 제 일 스스로 알아서 해주니 감사할 밖에. 안 아프고 잘 지내주니 황송할 뿐. 이젠 잔소리도 할 수 없다. 자기 세계, 자기 삶이 있으니 그저 마음 다치지 않고 마음껏 자기 세계를 펼칠 수 있기를 바랄 뿐. "아빠 나 잘 지내니 걱정 말고, 그만 끊어! 나 지금 가야 돼."

하지만 준택이는 아직도 손이 많이 필요하고 관심이 필요하다. 그저 바라보기에는 아직도 잔소리 할게 많다. 피아노 쳤니? 중국어 숙제는? 한국학교 숙제는 하고 놀아야지. 야 네가 할 일은 네가 다 해 놓고 게임을 해야지 게임만 하면 어떻게 해? 네 방 깨끗이 치웠니? 학교 숙제 다했어! 전화를 그렇게 받으면 어떻게 해? 먼저 인사를 하고 친구를 바꿔 달라고 해야지...

현지에 대한 사랑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고, 준택이에 대한 사랑은 훈련이고 간섭이고 관심이다. 현지에 대한 사랑은 편하게 해주고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것이고, 자유롭게 놔 주는 것이고, 그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가득 담고 사는 것뿐. 지금쯤에 딸아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요 구속이요 집착일 뿐 사랑이 아닐 것이다. 집착은 마음이 쏠려 매달리고 조정하려 하고, 행동이나 의사를 속박하려는 것이다. 사랑은 배려요 집착은 내 맘대로 하려는 태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나도 나를 못 바꾸는데 무모한 일이다. 나도 준택이와 현지만 바라보며 살수 없다. 내 인생이 있는 것이고 자기들 인생도 있는 것이니 안전하게 자기 삶을 꾸리도록 배려하고 관심 갖고 울타리만 만들어 줄 뿐이다.

집착과 사랑 사이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 갈등하며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힘들면 언제든지 아빠한테 말해. 알았지?"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는 것, 어려운 일을 당해 고통 당할 때 손 잡아주며 약간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일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이젠. "나는 너 때문에 산다!" 사랑하는 말 같지만 이것은 집착이다. 어깨 짐을 지우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너는 네 길이 있고, 난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다. 하지만 힘들면 내가 곁에 있어 줄게! 너는 내 딸로, 나는 네 아버지로 만나 서로 고마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거기에다 야무진 욕심 하나 더 보탠다면 "엄마 아빠 때문에 행복하게 살수 있게 되었다"고 해주면 그거 대박 아니겠는가? 살아보니 뭐가 되고 뭘 이루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도 나는 집착은 끊을 수가 없다. 또 묻는다. "여보, 오늘 현지한테 전화 안 왔어?" 다만 그 집착이 배려와 사랑으로 변하도록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글쓴이: 홍석환 목사, RISEM 지방감리사, hongdom@gmail.com
올린날: 2012년 9월 24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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