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지대에 서보면

초보 이발사가 3개월의 연수 끝에 떨리는 마음으로 첫 손님을 받았다. 그 동안 배운 기술로 최선을 다해 머리를 깎았는데 손님은 불평이다. "머리가 너무 길지 않나요?" 초보 이발사가 머뭇거리자 곁에 있던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손님 머리가 너무 짧으면 경박해 보입니다. 손님에겐 긴 머리가 잘 어울리시네요." 두 번째 손님도 불평했다. 너무 짧게 자른 것 아닌가요?" 또 머뭇거리자 이번에 스승은 이렇게 응답했다. "손님, 짧은 머리는 긴 머리보다 훨씬 경쾌하고 깔끔하며 정직해 보인답니다." 세 번째 손님은 이발 시간이 너무 길다고 불평했다. 이번에도 당황하는 초보와는 달리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다. "손님, 머리 모양은 인상을 좌우 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머리 다듬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요." 네 번째 손님은 초보의 이발에 맘에 들어 했다. "참 솜씨가 좋으시네요. 겨우 20분만에 말끔해졌습니다." 칭찬에도 반응이 서툰 초보자가 또 머뭇거리자 스승은 이렇게 답했다. "손님, 시간은 금이지 않은가요? 귀한 손님의 시간을 단축했다니 저희도 기쁩니다." 불평하든 칭찬하든 손님 모두가 만족하게 만든 스승의 말에 초보 이발사는 기술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축구경기에서 상대방이 너무 반칙을 많이 해서 많이 속상했다. 반대 팀이 반칙할 때마다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파울 숫자를 보니 우리 팀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팀이 파울을 범하는 것은 너그럽게 보거나 보이지 않았다. 내 팀에 눈이 먼 것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가려서 듣는다.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보고 싶은 것만 가려 들으려 한다. 그래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갈등이 심하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으면 천국인데 이 벽을 넘지 못한다. 머리는 너무 긴 것도 너무 짧은 것도 아니다. 시간이 너무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에겐 머리가 너무 길게 혹은 짧게 보이는 것뿐이다. 자기를 넘어선 사람에겐 모두가 최고이다. "슬퍼하는 사람에겐 시간은 너무 길고, 즐기는 사람에겐 시간이 너무 짧다." 사랑에 빠진 여인에겐 아예 시간이 멈춰 버리거나 너무 없다. 하지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에겐 시간은 너무 길고 지루하고 느리다.

폭설이 내렸지만 이내 눈을 뚫고 꽃이 피고 있다. 어느 새 눈이 봄비에 다 녹아 버렸다. 창문밖에 나무에는 이미 꽃망울을 가득 품고 있다. 눈을 감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보자. 눈을 크게 뜨고 봄이 소리 없이 다가오는 모습도 보자. 우리 편만 보지 말고 저쪽 편에서도 한번 바라보자. 그런 여유 없인 세상은 항상 바쁠 것이다. 또 이쪽 저쪽이라는 감옥을 벗어나 제 삼의 지대에 서서 이쪽도 보고 저쪽도 한번 바라볼 여유를 가져보다. 곧 "우리"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면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즐기고 나눌 축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고수 이발사처럼 세상의 아름다움이 밀려 올 것이다.

글쓴이: 홍석환 목사, RISEM 지방감리사, hongdom@gmail.com
올린날: 2013년 3월 29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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