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0월 초순에 첫눈이 왔습니다. 가을을 잃어버린 느낌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목사관 앞에 한창이던 돼지감자의 노란 꽃이 첫 눈에 무참하게 짓밟힌 모습입니다. 첫 농사라서 그런지 제 키보다 훨씬 높게 자랐고, 가지치기로 인하여 노란 색깔의 꽃이 숱하게 아름답게 피었는데, 그 기세 등등하던 모습이 하루아침에 초토화 되고 말았습니다.
장인어른의 장례식을 앞두고 그랬는지, 그 모습이 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첫 눈 내림이 마치 그날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장인께서도 그 정정하시던 분(83세)이 한 순간에 꺾임처럼 서둘러 가셨지요.
초토화된 돼지감자 사진을 찍어 페이스 북에 올리면서 이렇게 멘트를 하였습니다. "생존번식력이 그토록 대단하던 돼지감자(뚱딴지)가 첫 눈에 이처럼 초토화 되었습니다. 그래도 땅 속에 있을 열매를 기대합니다."
돼지감자는 11월 찬 기운이 들 때에 캐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지금부터 두 달 동안은 땅 속에서 그 열매가 익어갈 것입니다. 어쩌면 일찌감치 그 잎사귀의 기세가 꺾였기에 땅 속에서 더 잘 영글어 갈 것입니다.
장인께서는 다섯 살까지 키운 아들(요한)을 심장병으로 일찍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아들은 울고 있는 제 엄마에게 "천국에 가는데 왜 울어요."라고 하면서 갔답니다. 그 후로 장인께서는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하였고, 교회의 일에만 전념하셨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딸보다도 교회를 더 위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주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시면서 이제 더 이상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시고 오직 가실 곳만을 염두에 두셨던 것 같습니다. 장모님께서도 "먼저 가서 아들 요한이를 만나고 있으면 뒤따라갈게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셨습니다.
교인들이 마지막으로 방문하였을 때에 힘이 없으시면서 겨우 남긴 말씀도 "모든 말씀과 찬송들 하나하나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정말 꿀맛처럼 맛이 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을 그토록 좋아하였다기보다는 가야 할 때가 되었기에 믿는 맘으로 단호하게 가시고자 하셨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암으로 많이 아프셨을 터인데, 그렇게 많은 고통을 표현하지도 않으시고, 아주 덤덤한 모습으로 손자녀가 할머니와 담소하는 것을 바라보며 조용히 가셨습니다.
점잖으셨던 아버님이 보고 싶습니다. 이제 얼굴을 마주하여 볼 수 없다 생각하니 더 보고 싶네요. 그런데 마치 초토화된 돼지감자의 그 열매가 땅 속에 있는 것처럼, 내 안에도 그날에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지네요. "아버님처럼 달려갈 길 마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하면서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집니다.
글쓴이: 이선영 목사, 덴버연합감리교회 CO
올린날: 2013년 10월 15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