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값지고 귀한 것이라 할지라도, 좋아하지 않으면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 볼 일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눈에 콩깍지 씌운 것처럼 그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오홀라와 오홀리바가 "그가 연애하는 자 곧 그의 이웃 앗수르 사람들을 사모하였나니"(에스겔23:5),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정든 자 곧 그가 연애하는 앗수르 사람의 손에 넘겼더니"(에스겔23:9)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연애하기에 그들에게 넘겼다고 하셨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쫓아간다는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빠졌기에 그것이 나를 삼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를 삼킨다."는 것의 부정적인 측면은 거기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주초라든지, 노름과 같은 중독적인 것들입니다. 어디 그것들뿐이겠습니까? 자기 편리한대로 행하는 습관들, 머리에 드는 생각을 비판 없이 말하는 것들, 기독교인으로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저버리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들, 이미 몸에 익숙하게 습관화된 세속적인 삶들이 우리를 붙잡아 삼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게 그런 것들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며, 그것들로 인하여 여태껏 자유롭지 못함을 몸으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좋은 것에 물드는 모습입니다. 세례처럼, 깨끗한 물에 잠겨 예수에게 물들어 사는 모습일 것입니다. 학생 시절에,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미흡하였을 때에는 그저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짝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좋아하였습니다. 청년의 때에는 한 번 사는 인생, 진리 안에서 제대로 살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잘못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말씀들이 나를 붙잡아 주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면서,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거기에 깊게 물이 들어서인지 그것이 가장 잘 맞는 옷처럼 느껴집니다.
무엇을 하였는지, 무엇을 남겼는지 생각해보면, 별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거짓이 유혹을 하기도 하였고, 어둠이 가려 혼미하였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작은 빛으로나마 내 공간을 밝힐 수 있었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었고, 그것이 삼키듯 나를 지켜 주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글쓴이: 이선영 목사, 덴버연합감리교회 CO
올린날: 2013년 9월 9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