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과 일벌은 둘 다 암컷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구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처음에는 모두 똑같은 알입니다. 그런데 유충 때 일벌들이 특수 분비샘에서 만들어내는 소위 "왕유"(王乳) 라는 "로열젤리"를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미래가 상반되게 바뀝니다. 대부분의 일벌 유충들은 처음 어렸을 때만 이 분비물을 조금 먹고 그 다음부터는 일반 꿀을 먹고 자랍니다. 하지만, 여왕벌은 평생 이 로열젤리만을 먹고 자랍니다. 그리하여 일벌은 평생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여왕벌은 일벌들보다 스무 배 더 긴 생애를 살면서 여왕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참으로 불편한 진실이지만, 자신의 노력과 수고보다는 불공평한 운명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세상사 속에서도 이런 일들은 쉽게 발견됩니다. 부모의 재산이나 직위 덕분에 태어나면서부터 "특혜"라는 로열젤리를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노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인생 최대의 목표"가 그들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평범하게 주어지는 "출발점"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의 참담한 현실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드러납니다. 거룩한 목사들의 세계 속에서도 이 거북한 사실은 "세습제"라는 이름으로 연출됩니다. 초대형 교회의 목사님 자제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권좌에 오릅니다. 말은 십자가의 길이지만, 비춰지는 현실은 영락없는 "조선왕조실록"입니다. 그들의 자질이나 과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오직 로열젤리만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그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를 하다가 망쳐주어야(?) 멋진 그림이 나오는데 짜증나게도 목회를 정말 잘 합니다. 로열젤리의 힘으로 유학과 왕도교육 그리고 아버지의 절대적인 비호를 받으며 "용비어천가"의 주인공이 된 그들은 한마디로 정말 잘났습니다. 한 번은 제가 부목사님과 심방을 가다가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로열젤리 먹어 본 적이 있나?" 제 의도를 알았는지 절묘한 답을 합니다. "저는 로열젤리는 고사하고 설탕 물만 먹고 살았습니다. 목사님은 로열젤리를 잡숴보셨나요?" 저도 썰렁한 유머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설탕 물도 아닌 사카린을 먹으면서 자랐다. 그래서 항상 이 모양이지!" 실제로, 한참 자랄 때에, 설탕 대신에 뉴슈가, 당원, 신화당 같은 사카린을 많이 먹었습니다. 설탕보다 300배나 자극적이고 달콤했지만, 사카린은 항상 뭔지 모를 공허함과 부족함을 상징하는 화학물질이었습니다.
"로열젤리 타령"은 항상 나의 부족함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교활한 작전이었습니다. "사카린을 먹은 놈이 이 정도 하면 됐지 뭐!" 아울러 불공평하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푸념이었습니다. "나한테는 유독 인색하신 하나님!" 그런데, 며칠 전 권사님 중의 한 분이 "로열젤리"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옜다! 멍청한 놈아, 먹어라!" 화를 내시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 가서 한 스푼을 떠서 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도 여러 번 이 로열젤리를 먹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억을 못한 것뿐입니다. 아마도 "사카린 부작용"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로열젤리 한 스푼에 영안(靈眼)이 열렸는지 "무엇이 진짜 로열젤리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로열젤리를 가져다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마운 분들! 그들이 정말 로열젤리였습니다. 돌이켜보니, 내 인생에 로열젤리는 흔하지 않았지만, 로열젤리 같은 분들은 항상 주변에 가득했습니다. "아! 내가 사실은 로열젤리를 아주 많이 먹은 사람이었습니다!" 갑자기 부끄러웠습니다.
글쓴이: 김세환 목사, LA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3년 6월 2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