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악(發惡)의 십자가에서 피어난 발선(發善)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마 5:43-44/개역개정

북한의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계획 징후 등으로 전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했던 한 주였습니다. 전통적으로 북한의 우방국이었던 중국도 예상하지 못했다곤 하지만(실은 알았다고 해도 막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3차 핵실험은 특히 대한민국과 미국 정부로서도 뜻밖의 사건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이렇게까지 나오지는 않겠지'라며 방심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그 일말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려 버렸습니다. 결국 세계 곳곳에서 북한의 이번 실험을 규탄하고 UN과 더불어 미국 하원에서 더욱 강력한 조치로 북한을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제 자신은 지난 수요일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40일 간의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참된 평화의 왕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을 '말씀과 함께 떠나는 40일 여행'을 통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하셨던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한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과연 북한은 우리의 이웃일까, 아니면 우리의 원수일까?"

결국 그 어떤 대답이든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대로라면 북한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작금에 이르러 과거 북한에 호의적이었던 정부와 시민단체들에 대해서 맹비난하는 목소리들이 점차 커진 것은 소위 햇볕 정책의 결과가 이번 핵실험에 일조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인 정치가가 아닌 관계로 그 인과관계를 정확히 따질 능력도 제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양심으로 이번 사태에 대해 분명한 견해가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북한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위 한 개인이 발작적인 화를 표출할 때 우리는 흔히 '발악(發惡)한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발악'은 실은 그 개인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경우에 흔히 발생하게 됩니다. 모세의 율법은 "발선(發善)하는 사람에게는 발선하고, 발악(發惡)하는 사람에게는 발악하라"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발악하는 사람에게도 발선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인과응보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초월하실 정도의 선한 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거기에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다시 깨닫게 되는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의 그 길은 철저하게 '발선'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집행하는 자와 당하는 자들의 '발악'이 서로 첨예하게 부딪치는 곳입니다. 남의 생살을 찢어가면서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사람을 죽이는 집행자들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그 사형 집행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술에 의지하거나 혹은 굳은 마음으로 늘 사형장에 섰을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십자가형은 인류가 고안했던 형틀 가운데 가장 잔인한 것 중 하나였습니다. 그 위에서 죽어가던 사형수는 기절할 정도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음을 역사가들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야말로 '발악'과 '발악'이 만나는 곳입니다.

그런데 2,000년 전 그 십자가에서 단 한 번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발악'의 장소가 '발선'의 시발점이 되었고, '발악'의 사람들이 '발선'의 사람들로 변한 것입니다. 그 일은 나사렛의 청년 예수의 사형 집행 과정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그를 욕하고 죽이려 했던 사형수, 그리고 집행관이 '발선'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하게 십자가에서 당신의 입으로 하셨던 '발선'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셨던 예수님으로 인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묵상해야 할 사순절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조국 대한민국과 가장 가깝지만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는 북한은 크리스천인 우리가 끝까지 '발선'으로 품어야 할 이웃이자, 원수입니다. 그 동토의 땅, 그리고 차가운 마음을 지닌 우리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보혈이 흐르기를!

글쓴이: 최호남 목사, 어바나예수사랑교회 IL
올린날: 2013년 2월 2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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