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돈키호테

도널드 맥컬로우의 "광야를 지나는 법"이라는 책에는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풍자소설인 돈키호테를 인용해, 우리 자신을 알돈자, 그리고 하나님은 돈키호테로 비유한 대목이 있습니다. 알돈자는 여관에서 노새몰이꾼들의 술시중을 들며 살아가는 창녀입니다. 그런데 돈키호테의 눈에는 그 누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는 알돈자를 "오 나의 숙녀여"라고 부릅니다. 갸웃거리는 알돈자에게 돈키호테는 둘시네아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알돈자는 당시 천한계층에 흔한 이름이었던 데 반해, 둘시네아는 상류 귀족층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알돈자는 남자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상처를 입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알돈자에게 다가가 돈키호테는 '나의 숙녀 둘시네아'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알돈자는 '다시는 나를 숙녀라고 부르지 마세요. 난 시궁창에서 태어난 버림받은 태생이에요. 난 그저 알돈자일 뿐이에요. 발가락의 때만도 못한 인생이에요' 라고 말하면서 밤길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런 알돈자를 향해 돈키호테는 소리칩니다. "그래도 당신은 나의 숙녀라오."

돈키호테는 이후에 세상의 부정과 부패에 맞서 약자들을 돕기 위한 모험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상주의자인 그에게 남겨진 것은 사람들의 멸시와 현실이라는 냉대뿐이었습니다. 결국 상심 속에서 그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느 날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돈키호테 앞에 스페인 왕비가 다가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립니다. 돈키호테가 힘없이 눈을 떠 누구인가 물어봅니다.

"저를 기억하지 못하세요? 제게 노래를 불러주셨잖아요. '불가능한 꿈을 꾸어 보아요.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워 보아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참아보아요.' 그리고 제게 새로운 이름을 주어주셨죠. 둘시네아라고요. 제가 바로 당신의 숙녀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돈자입니다. 현실의 고통과 커다란 장벽에 갇힌 알돈자입니다. 그래서 눈도 멀고 귀도 막히고 입도 열리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돈키호테처럼 항상 옆에서 따스한 음성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라고 불러 주십니다. 너무 힘들어서,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입과 귀가 닫힌 것처럼 모든 것이 다 막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에바다"하고 용기를 주십니다.

이야기를 다르게 적용해 볼까 합니다. 현실적 가치를 넘어서 오늘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정신을 이야기하는 제가 돈키호테입니다. 이상주의자입니다. 현실의 눈으로 보면 비현실적인 것을 넘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이상을 품고 계속 말합니다. 헌데, 쉽지 않습니다. 부딪히는 현실의 벽이 정말 크게 느껴집니다. 내려 놓으면 안될 것 같은데, 마음에 금이 갑니다. 무작정 떠난 이 모험 여행을 멈추고 싶습니다. 그래도 제게 생각나는 이름이 있습니다. "둘시네아" 제가 불러드린 여러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제가 말씀으로 드린 이상에 대한 신념과 용기를 되돌려 주시겠습니까? 저를 위해 '에바다' 함께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글쓴이: 권혁인 목사, 버클리한인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2년 9월 1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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