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저는 자랄 때 어머니와 식탁에 앉아 시시콜콜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해방둥이인 어머니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의사이셨던 외할아버지께서 몽골에서 어머니 말(馬)도 사다 주셨답니다. 하지만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열 살 때 어머니를 여의시고 할머니 품에서 자라셨습니다. 한 번은 주일학교에서 전쟁 때 순교한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오셔서, "할머니, 난 예수님 믿으면 총으로 '빵' 쏴 죽인다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칼로 찌르면 무서워서 못할 것 같아!" 하셨답니다. 외증조할머니께서 어머니를 가만히 앉으시고 조금 생각하시다가, "응, 그 때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거야" 하셨답니다. 그렇게 신앙을 키워주셨던 외증조할머니도 감수성 예민한 소녀 시절에 돌아가셨습니다. 결혼 직전에는 사고로 남동생까지 잃으셨지요. 제가 그 외삼촌을 많이 닮았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15년 전에는 오랜 병환 끝에 언니도 그리고 몇 년 전엔 오빠도 하늘나라로 보내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헤어짐이 늘 쉽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몇 년 전 한국에 다녀올 때 공항까지 나오셔서, 전에 저를 보내면서 쓰셨다는 시(詩)를 건네주셨습니다. "아들이 떠나간다 비행기를 타고, 익숙한 모국어는 인천 공항에다 떨어뜨리고, 이제 다시 다른 말로 지껄이겠지. 고국의 산천 거리 골목길을 눈에서 지워 버리고, 낯선 거리에서 바람을 맞겠지. 어쩌면 포크 나이프로 고기를 썰면서, 오뎅 떡볶이 붕어빵 맛은 애써 잊으려 하겠지. 그래도 제 가족을 만나 하하 호호 웃으며, 식탁 앞에 앉았을 생각하며, 아들을 떠낸 가슴을 달래어 본다." 쓰신 날짜를 보니 며칠 동안 그런 마음이셨나 봅니다. 저는 그 서운함을 미국 행 비행기에서 잊어버렸는데, 그래서 "내리사랑"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어머니의 마음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49:15) 어미는 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때문에 여러분 절망하거나 낙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백승린 목사, 탬파한인연합감리교회 FL
올린날: 2013년 5월 13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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