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인가?

어떤 분이 하나님의 공평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자기에게 극심한 고난을 주시지 않았다면(혹은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자기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예기치 않은 고난이 닥쳤기 때문에 자신을 깊이 되돌아볼 기회를 얻었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육적인 영적인 복을 많이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친구를 볼 때면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곁에서 이 친구를 보아왔는데 이 친구의 인생은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울뿐만 아니라 큰 고난도 닥친 적이 없어서 자신의 죄성을 돌아볼 필요도 없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무리 비윤리적으로 살아도 그 어떤 하나님의 징벌도 없으니 자신의 삶의 패턴을 바꿀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자기를 큰 고난으로 다루신 것처럼 그 친구도 똑같이 다루신다면 그도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게 될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은 원래 불공평하신 분인가? 왜 나에게는 고난을 통해 회개로 이끄시는 은혜를 주시고 그 친구에게는 그런 은혜를 주시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의 공평성에 대한 의문은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사람들의 마음에 끊임없이 제기된 질문이다. 물론 성경에도 이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이 담겨 있다. 왜 하나님은 장자로 태어난 에서를 버리고 차자로 태어난 야곱을 선택하셨는가? 그것도 그들이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그렇게 되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야곱은 간사하기 그지없는 사람인데 왜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일까? 이것이 곧 하나님의 불공평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또 욥기에 보면 하나님이 동방의 의인이라고 인정받는 욥에게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초대형 고난들을 주시는데 너무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그런 재앙은 극악한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나 내려야 할 것같은데...

하나님의 공평성에 대해 여러 가지 차원의 설명이 가능한데 그 중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이 인간사고(思考)의 한계로 설명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인간이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본다고 해도 신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체 그림을 보시지만 우리는 시공의 제한성에 갇힌 일부분만을 본다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한 박자씩 연속해서 듣고 영화를 볼 때면 한 장면씩 연속해서 보면서 전체를 이해한다. 시간을 초월해서 단번에 전체를 듣거나 볼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실 때 순차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들으시고 영화도 단번에 다 보시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세상에 일어나는 어떤 사안에 대해 우리 쪽에서 불공평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님 쪽에서는 충분히 공평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잘 보아 봤자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서 보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 위에서 보시기 때문에 전체 그림을 보시면서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는 것이다.

가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불공평하다는 불만을 듣는다. 자녀들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공평한 것인데 부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정반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불공평한 판단인가? 그렇지 않다.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보는 자녀에 비해 더 크게 보고 더 넓게 보는 부모는 공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은 공평해야 한다는 명제를 믿는다면 그 명제 뒤에는 하나님의 시각에서의 공평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무리 우리 쪽에서 공평하게 보이는 일도 하나님 쪽에서 볼 때 공평하지 않다면 그건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 쪽에서 불공평하게 보여도 하나님이 보실 때 공평한 것이라면 그건 공평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평성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공평성의 수준을 뛰어넘는 초월자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고, 비록 내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공평한" 결정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글쓴이: 홍삼열 목사, 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3년 7월 1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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