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됨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마 5:39-42/개역개정

산상수훈을 비롯한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몸소 보여주셨던 행동은 똑똑하고 영악한 현대인들이 그대로 답습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바보같다'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 '왜 바보같이 당하냐'라는 식이 대부분이었을 요즘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그저 바보처럼 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기란 결코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나의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른 뺨까지도 때리라며 대줄 수 있으며, 내 시간과 소유를 무자비하게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그 상대방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까지 갖다 바칠 수 있습니까! 바보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행동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저 단순히 말장난으로가 아니라 당신을 따르기로 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곤혹스러운 명령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대한적십자 총재를 역임하며 살아있는 양심으로 불리는 한완상 전 부총리는 최근 그의 신간에서 2,000년 전 이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사셨던 예수님이야말로 바보가 되기를 작정하신 분이라고 소개하면서 크리스천이 세상 속에서 살아내야 할 바보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바보는 바로 보살펴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이지요. 성직자들은 억울하게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피해 갔지만, 돌쌍놈으로 욕먹었던 잡종 인간 사마리아인은 진정 바보였습니다. 그만이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을 바로 보살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바보답지 않아도 되셨을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분은 태어나셨을 때부터 죽음에 이르는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모든 언행의 특징은 한마디로 '바보스러움'에 있습니다. 남에게 주기보다는 더 많이 갖기 원하는 우리의 욕심이, 남을 살리고 내가 죽기보다는 남이 죽든지 상관하지 않고 내가 먼저 살고 보려는 이기심이,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곤함과 두려움을 피하고 싶어하는 자기중심적인 자기 사랑은 주님께서 당신의 삶으로 몸소 보여주셨던 그 '바보스러움'과는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선언했던 위대한 고백,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겠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엘리트로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던 바울의 '자기 바보화' 선언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영적인 눈을 뜨지 못했던 그의 동료들, 소위 과거의 바울만을 알던 사람들은 그를 '예수에 미친 희대의 바보'로 평가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은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면서 살던 바울이 '작기 바보화'를 선포하며 살게 된 계기를 알려주는 셈입니다. 바로 세상의 눈과 귀로는 결코 이해하지도 설명할 수도 없는 '바보스러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뒤를 따라 바보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바울은 실제로 세상 속에서 바보처럼 살다가 죽었습니다. 바보를 만나 바보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그 '바보스러움'은 결코 모자라거나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진 자일 수도 있고, 부족한 것 없이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더 낮은 자리로 흘러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 '바보같은 사랑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더 아름다워집니다. 혹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질 때조차도 예수님을 따라 '자기 바보화'를 살아내는 사람은 실은 엄청난 보물,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진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크리스천에게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 때문에 '넌 참 바보같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결코 욕이 아니라, 가장 큰 칭찬임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은 그런 바보 같은 사람들로 인해 감동받고, 그런 바보들이 늘어날수록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글쓴이: 최호남 목사, 어바나예수사랑교회 IL
올린날: 2012년 12월 4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관련

사회적 관심
백두산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두손을 잡았다. KBS 화면 캡쳐

우리 시대에 평화? 한국의 진전을 축하하며

위스콘신 연회의 정희수 감독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다. "Peace in Our Time" by Bishop Jung in English and Korean.
사회적 관심
Goodbye-reunion at Mt. Diamond in N. Korea in 2018. MBC TV screen capture.

희망의 시작 '작별 상봉(作別 相逢)'

'180초짜리 만남'이나 '작별 상봉'은 헤어짐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을 알리는 만남이 될 것이다.
교단
위스컨신 연회 정희수 감독

“누구를 위한 전쟁입니까?”

연합감리교회 총회사회부와 평화위원회가 워싱턴 디시에서 함께 주최한 한반도 평화포럼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Forum) 개회 예배 정희수 감독의 설교 전문(한어 번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