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옛 가요 중에 김상범씨가 부른 "오뚝이 인생"이라는 노래가 있다. 오뚝 오뚝 오뚝이 놈이/ 넘어질 듯 비틀거리다가/ 여봐란듯이 일어나네/ 세상살이 고달프다고/ 말만 많은 양반들아/ 오뚝이처럼 살아가소/ 빈털터리 단번 옷에/ 사랑을 하다가 실패를 해도/ 백절불굴 정신이라/ 어화 둥둥 내 사랑아/ 내 사랑이 돌아오네/ 오뚝오뚝 오뚝이/ 오뚝 오뚝 오뚝이/ 오뚝이가 내 사랑일세. 옛날 노래가 생각나는 이유는 요즈음도 오뚝이처럼 살아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넘어져도 또 다시 일어나는 삶 말이다.
지난 보스턴 마라톤 폭발 사고 피해자중에 발목이 잘려 나간 여성이 있다. 댄스 강사인 애드리안 해슬릿-데이비스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다가 휴가 온 남편과 함께 마라톤 경기 결승선 부근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두 번째 폭탄이 터진 곳에서 멀리 않은 곳에 서 있다가 애드리안이 왼쪽 발목을 잃었다. 폭발 후 뒤로 넘어졌는데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아담이 아내가 다친 것을 알고 자기 허리띠를 풀어 다리를 지혈하면서 발목이 절단된 것을 알았다.
댄서의 한쪽 발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가? 자신의 발을 빼앗아간 사람을 향한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두발이 건장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자신의 발 하나가 없다는 현실을 받아 드려야 한다. 그렇다고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애드리안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발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훔쳐가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자기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훌륭한 사람, 최고의 무용가와 무용 선생, 그리고 최고의 아내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내년에는 보스턴 마라톤에도 출전하겠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얼굴이 예쁜 사람일까? 육체미가 뛰어난 사람일까? 두뇌가 명석해서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사람일까?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권투 경기를 좋아하는 지 모른다. 상대방의 펀치를 맞고 고목 쓰러지듯 넘어진 사람이 다시 일어나서 싸울 때 얼마나 신이 나는지 모른다. 넘어뜨린 사람은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넘어졌던 사람이 상대방을 KO로 이길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이 있다. 실패를 해도 계속해서 일어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에디슨이 백열등의 필라멘트를 만들 때였다. 어느 날 조수가 에디슨에게 말했다. "선생님, 필라멘트를 발명하려고 벌써 90가지 재료로 실험을 해 보았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필라멘트를 발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으니 중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에디슨은 "무슨 소리야.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안 되는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낸 성공적인 실험이었다네" 라고 말했다. 에디슨에게 실패는 없었다.
오뚝이처럼 역경을 이기고 일어선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소식은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분들의 이야기다. 얼마 전에 "여든 넘은 여중생" 이상은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분은 지난 2년 동안 경기도 부천 집에서 서울 마포 일성여중까지 1시간 30분 거리를 통학했다. 왕복 3시간 걸려 학교 다니는 84세의 할머니 (학교에서는 왕 언니라고 부른단다)의 열정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65세에 은퇴하여 95세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분이 있는데 그 분에 비하면 이 할머니는 아직 젊다.
미국에 오기 전 유학 준비가 쉽지 않았다. 토플 시험과 경영학 대학원 과정 응시자가 치러야 하는 GMAT 시험을 여러 번 보았다. 영어 실력이 금방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 또 보았다. 유학의 꿈을 꾼 이후 입학허가를 받기까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때 미국에 가면 미국사람처럼 영어도 잘하리라 마음먹었다. 아직도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꿈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단순히 영어로 소통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전하고 싶은 마음 적지 않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는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걷지 못하는 거지를 걷게 했다. 이런 기적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베드로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다. 그 거지를 낫게 한 것은 자기가 아니고 부활한 예수라고 (사도행전 3:15). 창조자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가 억울하게 죽은 것으로 끝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는 제자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고 그는 신앙 세계의 오뚝이였다.
지난 2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이후 한반도는 아직도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 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남북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실업자가 되었고 그곳에 많은 투자를 한 중소기업 주인들은 눈물을 흘린다. 이제 개성공단에 남은 7명마저 돌아오면 개성공단의 미래는 아주 불투명하다. 개성공단 기업가들은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오뚝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도한다. 개성공단의 문이 다시 열리는 날 서로를 축하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쓴이: 김용환 목사, 북부보스턴한인교회 MA
올린날: 2013년 5월 2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