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 전보다는 중국의 도로 사정이 한결 나아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흑룡강성 하얼빈을 두 번 방문했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이 혼잡한 것은 이번에도 비슷하였습니다. 아니, 심해진 매연 때문에 더 혼돈스러워 보였습니다. 거의 매일마다 판매 차량이 늘고 있다는 안내하시는 분의 말씀대로, 도로는 차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분들의 운전방식을 보면서 배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의 도로는 분주하고 교통법규를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상관없이 질주하고 경적소리가 요란함에도 저에게는 특이한 면이 보였습니다. 운전자들과 도로를 건너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보면서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고 해서 '무작정 이 길은 내 길!' 하면서 달리지 않고 주변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시야에 두고, '나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선 도로 교통법을 사람들이 잘 지키는 편입니다. 그런데 신호가 바뀌고 내가 갈 차례가 되고 그 길이 '내 길'이 되면, 차들은 대개 주변에 움직임에 주의하기 보다는 '나의 권리'를 주장하듯 달립니다. 90년대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그래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기다리면서 남을 배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즈음은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경적을 울리며 경고를 합니다. 좌회전을 준비하고 있어도 마주 오는 차는 속도를 줄이는 법이 드물어졌습니다. '정신 차려라!' '내 권리를 막지 마라!' 섬뜩함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중국의 도로는 미국적 기준에서 보면, 혼란스럽기 그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상대편을 내 시야에 두고 나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준비를 하며 도로를 '헤쳐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중국적 배려'라고 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혼란이 혼돈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긍정 포인트를 잡아내게 되자 이내 제게 다가온 느낌은 '나름대로의 질서와 배려'였습니다.
신앙생활은 보이는 것으로만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내 마음의 시야에 두는 결단입니다. 그래서 눈속임하지 않고 마음속 진심을 귀하게 발굴하며 삽니다. 내 권리 중심으로 혼자 사는 길을 내려놓고, 다른 이웃을 내 마음의 시야에 두고, 나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고 사는 것.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가복음 12:30-31). 혼돈에서 질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글쓴이: 류재덕 목사, 밸리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2년 10월 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