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화초를 아름답게 키우시는 집사님의 가게에 심방하면서, 20여 가지의 각종 화초들이 싱싱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며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며 제 아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집사님네 화초는 어떻게 이렇게 잘 자라죠? 저희 집 화초는 늘 시들고 죽는데…”
그 질문에 푸르게 자라나는 화초를 대견히 바라보시며,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모님, 이 많은 화초들이 다 제 자식 같아요. 저는 이 화초들의 이름을 다 알아요. 제가 직접 이름을 지어줬거든요. 얘들을 매일 만져주고 쓰다듬으며 이렇게 늘 말 해준답니다.
영희야(화초이름임),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안심하고 잘 자라거라.”
가끔 누군가의 선물로 집에 화초가 생기면 몇 달 못 가서 시들어져서 말라버리곤 하는 저희 집 화초들을 떠올리고, 정반대로 언제나 싱싱하고 아름다운 집사님 가게의 화초들을 비교하며, 저도 처음에는 그 가게의 환경이 좋아서, 아니면 화초가 비싼 것이라 아름답고 싱싱한 줄 알았는데, 화초들에 쏟아 붇는 그 집사님의 사랑과 정성을 확인하면서, 화초를 죽고 살리는 차이는 바로 사랑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화초들은 사랑의 손길을 받고 싱싱해졌고, 심지어는 사랑의 음성을 들으며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원리가 제 마음 깊은 곳에 깨달아지며, 사랑의 위대함에 새삼 감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모든 만물들은 바로 그 사랑으로 지으셨고, 사랑으로 지음 받은 모든 것들은 사랑을 받고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집사님의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자기 집에 있는 죽어가는 화초를 그 가게에 갖다 놓으면, 몇 달 안에 그 시들어 죽어가던 화초가 몰라볼 정도로 변하여 화사하게 살아나 주변의 화초들과 같이 싱싱해진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 저희 집에 놓여 있는 화초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쪽 구석에 있는 둥 마는 둥 처박혀 있는 외로운 화초의 모습에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그 동안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은 화초에게, “왜, 이 화초는 시들고 볼품없지” 하는 핀잔만 준 것도 미안해졌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대충 물만 주면서 “얘는 왜 이래?”라고 부정적인 말만 했던 것을 화초가 듣고 지금까지 지내왔던 것에 울컥하며 미안해졌습니다.
화초 하나도 사랑으로 죽고 사는데, 하물며 우리 인생들은 어떻겠습니까? 우리 주님의 간곡한 부탁이신 ‘서로 사랑’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생생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화초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해줍니다. “화초야, 미안해. 앞으로 사랑해줄게!” 화초가 드디어 미소 짓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