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못하겠어요." "내가 이런 무시까지 당하면서 이 봉사를 해야합니까?" "왜 하나님은 제 기도를 안들어주시는지 정말 실망했어요." 목회 하다 보면 이런 얘기들을 듣습니다. 왜 이런 얘기들을 할까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오해입니다. 보통 복음을 제시하면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는 말씀을 많이 합니다.
간과하면 안될 것이, 이 말씀은 로마서 10장에 있다는 사실이고, 이 말씀을 읽는 사람은 그 전에 바울이 설명한 믿음의 내용을 알고 있음을 전제합니다. 믿음의 내용에 대한 이해와 수용 없이 "입으로 시인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값싼 복음"을 만들었고,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신앙생활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바울은 6장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롬 6:6-8,11, 새번역)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죄에 매였던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매인 나"는 그렇게 끝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예수와 함께 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새 창조"이고 새 인생의 시작입니다(고후 5:17). 죄는 본질상 씻겨지지 않습니다. 죄인이 죽어야 끝납니다. 이 "죽음과 새 창조"가 복음의 핵심이고, 이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내가 동참하는 것이 믿음이고, 그 고백이 세례입니다.
결혼했으면 자유롭던 총각 시절은 끝나야 합니다. 한 여인을 아내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여인들을 이성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으로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여인의 남편으로 전혀 새로운 삶을 열어갑니다. 그런데 "총각 시절을 죽이는 선언"이 없으면, 살면서 총각 시절이 그리워지거나 다른 여인들에게 눈이 갈 때 그 본능에 끌리게 됩니다. 문제는, 결혼 서약 때 총각 신분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옛 사람의 죽음"을 거치지 않고는 "새 사람의 생명"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자기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가장 큰 축복과 은혜가 새 생활 자체입니다. 아무 기도 응답이 없다해도, 새 생활 자체로 감격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글쓴이: 조현준 목사, 앤아버한인연합감리교회 MI
올린날: 2013년 10월 3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