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과 홉스 사이에서

어제 목회스텝회의를 하면서 헤겔의 정반합이론과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을 통한 절대적인 왕권옹호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헤겔과 홉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가능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헤겔이 주장하는 정반합 이론을 통한 역사발전을 꾀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교인들 가운데는 홉스가 말하는 절대 왕권적 권위를 목사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져서 절대적인 진리를 세워가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불변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는 것과 십자가 구원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그분이 우리 주님이시라는 이 진리는 소위 non-negotiable truth(협상 불가능의 진리)입니다. 이 진리수호를 위해서는 홉스적인 목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 협상불가능의 진리와 무관한 다른 것들까지도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권주의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신적인 절대권위가 목사에게 있는 것처럼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존재들은 인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 웨슬리가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모든 것에 사랑으로"라고 말한 것처럼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경우는 헤겔적인 목회가 건강한 목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 보면 선언적인 설교를 강하게 하면 영적인 권위가 있는 목사라고 좋아합니다. 그런가 하면 목사가 권위의식을 가지고 야단을 치면 좋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성도들이 생각하며 살도록 합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삶의 고민을 함께 나누려고 하면 인간적이라고 하거나 영적이지 않고 이성적이라고 과소평가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잘못된 모습 가운데 하나가 건강하지 못한 심리적 현상입니다. 그것은 신학자 래리 러셀이 말하는 새디즘적인 설교자와 매쇼키즘적인 회중의 관계입니다. 설교자는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양 착각하면서 교인들을 야단치는 재미로 설교하고, 교인들은 얻어맞는 쾌감을 즐기는 아주 뒤틀린 건강하지 못한 관계입니다. 설교자나 교인 서로 인격적인 존중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도 성경공부도 배움을 서로 나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높은 영적인 경지에서 가르치고 누구는 일방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배우는 관계를 설정하면 건강한 배움이 불가능해집니다. 문제는 그 동안 성경적이니 영적이니 하는 것들을 건강하지 못한 관계설정에서 배웠기 때문에 이 문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씀드리는데 가끔 어떤 분들 보면 넘어지는 것 좋아하는 분들 있습니다. 재미나 호기심으로 한두 번 그러는 것은 모르지만 상습적으로 넘어지는 것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고칠 때 쓰러뜨려서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교인들이야 순수한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면서 그런다고 하지만 목사들 가운데 자기가 무슨 능력으로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것 연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 치유하심의 본질보다는 비본질적인 현상에 서로 감동받고 은혜받는 것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종교 사기꾼들에게 당하고 맙니다. 저는 웬만하면 여러 사람들이 여러 은사를 잘 발휘해서 교회의 덕을 세우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이비나 사기꾼들이 교계에도 허다하기 때문에 목사로서 교회를 지켜야 할 필요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가끔 유혹받는 것은 나도 헤겔보다 홉스적인 목회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목회하기가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 아닙니다. 헤겔적 접근방법으로 목회를 하려고 하면 때로 목사에게 필요한 기본권위와 공동체의 질서를 무시하려고 하는 무례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모두가 불행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건전한 신학, 건강한 신앙, 건설적인 실천이 있는 교회 세워가기를 포기하면 안됩니다. 이를 위해 교회에서 상호존중에서 나오는 자유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질서도 중요합니다. 가끔 셀모임에서도 교회의 덕을 깨는 말이나 특별히 목사의 설교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쉽게하는 리더들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이 있으면 교회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면 개선도 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뒷담화 형식으로 셀에서 리더들이 그러는 것은 삼가해야 합니다. 신천지라는 집단이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말들을 퍼뜨리고 불만을 극대화 시키다가 자기들의 교회로 이동시키는 집단인데 그 방법이 너무도 파렴치해서 한국교회 피해가 크다고 합니다. 작거나 크거나 어느 셀처치도 신천지같은 행위는 교회에서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성도들이 변두리에서 점점 신앙의 핵심으로 들어오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은혜받는 집회에 잘 참석하고 교회 리더가 되기 위한 훈련도 잘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셀리더를 포함하여 교회 리더들은 담임목사와 공부하는 훈련모임에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 앞으로 저는 교회 질서를 위해서는 홉스적인 목회를 하겠고 설교와 성경공부 등은 헤겔적으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글쓴이: 김정호 목사, 아틀란타한인교회 GA
올린날: 2013년 7월 1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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