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만 참아봐요

'카카오톡'을 통해 내게 전달된 '3초만 참아요'란 말이 꼭 새해를 맞는 나에게 주는 말로 들려서 여기 옮겨보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 단추를 누르기 전 3초만 기다리자.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출발신호가 떨어져 앞차가 서 있어도 클랙슨을 누르지 말고 3초만 기다려 주자. 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내차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3초만 서서 기다리자. 그 사람 아내가 정말 아플지도 모르니까.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3초만 보고 있어주자. 혹시 그가 가다가 뒤돌아 봤을 때 웃어 줄 수 있도록.
길을 가다가 아침 뉴스에서 불행을 맞은 사람들을 보면 잠시 눈감고 그들을 위해 3초만 기도하자. 언젠가는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그리할 것이니까.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는 때라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내가 화낼 일이 보잘것없지는 아니한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 쳤을 때 3초만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자. 그 아이가 크면 분명 내 아이에게도 그리 할 것이니까.
죄짓고 감옥 가는 사람을 볼 때 욕하기 전 3초만 생각하자. 내가 그 사람의 환경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가 잘못을 하여 울상을 하고 있을 때 3초만 말없이 웃어주자. 잘못을 뉘우치면 내 품으로 달려올지도 모르니까.
아내가 화가 나서 소나기처럼 퍼부어도 3초만 미소 짓고 들어주자. 그녀가 저녁엔 넉넉한 웃음으로 한잔 술을 부어줄지 모르니까.

누가 처음 써서 올려놓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한 번 이렇게 살아볼 수는 없을까? 한 잔 술을 부어 줄지 모른다는 말이 좀 거시기 하긴 하지만.

2013년에는 3초만 참는 게 아니라 3분도 참고 30분도 참고 좀 넉넉하게 참고 양보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총총 걸음보다는 갈지자 걸음걸이로 느림의 행복을 음미하는 그런 한 해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씩이나 '일드(Yield)'란 입간판을 보며 세상을 살아간다. 교통 표지판을 말함이다. 샛길에서 큰 길로 진입할 때 옆에서 차가 급하게 달려 올 수가 있으니 양보하라는 표지판이다. 급한 성질 다스리지 못하고 마구 들이대다가는 접촉사고, 혹은 대형 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있다는 친절한 양보 표지판에도 불구하고 대충 무시하고 그냥 색색 지나치는 게 우리들의 생활습관 아닌가?

그런데 운전만 양보가 아니라 사실은 인생살이 현장에서도 양보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양할 양(讓), 걸음 보(步) 즉, 길이나 자리, 물건 따위를 사양하여 남에게 미루어 주거나 자기의 주장을 굽혀 남의 의견을 좇음을 양보라고 한다.

성질 급한 사람에게 양보란 실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현기증 나게 빠르게 변하는 이 세상을 따라 잡으려면 정신 없이 바빠야 한다. 맨하튼의 증권거래소를 상상해 보라. 거기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정신 줄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인지 의심 갈 정도로 바쁘다고 아우성이다. 숨 넘어갈 시간은 있는지 모르겠다.

양보란 한 템포 느리게 가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미덕이다. 그래서 우리는 느리게 사는 연습이 필요하다. 언제부터인가 조금 느리게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슬로비(Slobbie)족이란 말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을 뜻하는 말이다. '여피'족 이후 등장한 세대라고 하는데 여피족이 성공 지향적이고,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전문직 종사자라면 슬로비족은 삶의 여유와 안정적인 가정생활, 마음의 평화를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느림의 미학을 찬양하며 슬로, 슬로를 추구하는 슬로 라이프스타일, 그러니까 느리게 먹는 슬로 푸드, 느리게 걷는 슬로 워킹, 느리게 입는 슬로 패션 등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느 부류의 사람들에겐 생활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슬로 라이프스타일을 비웃는게 패스트푸드 맥도날드이다. 패스트 시대의 상징이자 동시에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맥도날드가 이태리 로마에 진출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기 위해 느리게 먹자는 슬로 푸드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하여 이것이 세계 여러 곳으로 확산된 것이다.

좌우지간 금년엔 좀 느리게 가자. 느리게 가다 보면 3초도 참을 수 있고 3분, 심지어 30분도 참을 수 있다.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을 때 3초만 하늘을 바라보자. 고까짓 일로 내가 화를 내고 있었다니&ellipsis; 금방 자신의 부끄러운 꼬락서니를 발견하고 넉넉하게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고 일어나면 변화하는 이 세상의 기술 문명에 기가 차는가? 두려울 것 없다. 그 잘난 세상에 코웃음을 쳐주고 내 템포대로 인생을 걷는 것이다. 천천히, 또 천천히, 거기서 여유가 생기거든 넉넉하게 양보하며 금년 한 해를 살아가는 슬로라이프 스타일,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면 '나는 슬로 스타일'로 이 한 해를 살아보자.

글쓴이: 조명환 목사, 크리스천위클리 CA
올린날: 2013년 1월 24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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