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후의 미래

지난 수요일 저의 마음은 아침부터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3년 만에 한 교실에서 공부하였던 동창들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기 동창 부부들 50명이 한국과 미 본토로부터 하와이로 찾아와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똑같이 머리를 깎고 똑같은 교복을 입고 한 교실에서 생활하였던 홍안의 소년들, 어쭙잖게 어른의 흉내를 내보려고 날갯짓하던 소년들이 이제는 모두가 인생의 풍화작용에 깎이고 다듬어져 60을 넘긴 초로의 모습으로 만난다 생각하니 마음에 진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동창 중에는 이름이 가물가물한 친구들이 있었고 얼굴은 생각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추억의 모습들이었습니다.

미 본토에서 따로 오는 친구를 픽업하러 공항에 나갔다가 한참을 찾았습니다. 얼굴을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전화번호를 겨우 찾아 연락이 되어 만나보니 반백의 노인이 댓 걸음 옆에서 가방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서로 알아보지 못한 겁니다. 자세히 보니 어릴 때 모습이 보입니다. 어떤 친구는 아예 백발이 되었습니다. 하얗고 팽팽하던 얼굴엔 굵은 주름이 역력합니다. 함께 모이니 마음은 아직도 10대인데 몸과 얼굴은 한 갑자를 돈 인생답게 중후한 모습들이 역력합니다. 사회적으로 신앙적으로 다양한 모습이지만 모두가 기둥같이 든든한 책임 있는 지도자들로 옆에 아가씨들을(?) 한 분씩 모시고 나타났습니다. 어렸을 때는 알지 못했던 43년 후의 미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모두 꺽다리, 한때 치과대학을 다니던 김낙인이 시무하는 교회는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수요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110년 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들을 하였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말씀 전에 동창들 전원이 부부 동반하여 단에 올라 "살아계신 주"를 찬양하였습니다. 음악적으로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나 43년 전의 소년들이 60이 넘어 부부 동반하여 친구가 시무하는 교회 예배에서 찬양한다는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그날 저녁에는 간증이 있었습니다. 25명의 동기 중에 교역자가 3분인데 모처럼 쉬러 온 그들 중 누구에게 설교를 부탁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 동기 중에 한 장로님에게 간증을 부탁하였습니다. 간증자는 변진호 장로입니다. 그는 저와 같이 상도동 교회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저를 잘 압니다.

그런 개인적인 연이 있기도 하지만 제가 변 장로님에게 간증을 부탁한 이유는 그가 우리 교회 6대 담임이셨던 변홍규 목사님의 손자였기 때문입니다. 변홍규 목사님은 1930년대 우리 교회에 시무하시다가 한국으로 가셔서 기독교 감리교회의 감독을 지내셨습니다. 그렇게 변 목사님과의 인연은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먼 훗날 두 세대나 지난 오늘 자신의 손자가 자신이 섬긴 교회에서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 교회에는 손자의 절친한 친구인 제가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으며 태평양을 건너 함께 만나 찬양하고 간증하는 모습 속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경륜의 물줄기는 그치지 않고 면면히 흘러갑니다. 그리고 아직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손들에게까지 이르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드린 헌신은 절대로 공허하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움이 터서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라고 하신 바울 사도의 말씀이 마음에 부딪혀 왔습니다. 지난 주간 멀리서 제게 찾아온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경륜을 깨닫게 하시려고 보내주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주님께서 그렇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기대하며 깨달음과 감사함 속에 살아가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렇게 축복하시기를 원합니다.

글쓴이: 김낙인 목사,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HI
올린날: 2013년 9월 3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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