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소리치며 일어나야 한다

북한 탈북자 청소년들이 라오스까지 왔다가 강제로 북송 되면서 여기 저기서 우리들의 마음이 성난 감정으로 불꽃처럼 뜨거워진다. 우선 잡혀간 아이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그들은 남의 아이들이다. 미국 아이들도 아니다. 그런대도 미국 인권국의 일원인 수잔 솔티와 의원들이 저들의 잔혹한 북송에 대해 분노하며, UN과 함께 저들의 안전에 대해 크게 염려하고 있다. 탈북자 아이들의 긴급한 상황은 저들의 가족도 아니다. 근데도 저들의 애타는 목소리는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이와 같은 태도와는 달리 우리들의 모습은 한숨이 난다. 북한에서 라오스까지 죽음의 사선을 넘어 와서 100번이나 선교사가 한국대사관에 협조를 요청했어도 소극적인 태도로 응답한 것은 외교관들의 직무태만이며, 직무이탈이다. 탈북자들이 넘어오는 일은 오늘 어제의 일이 아니며, 돌연히 발생한 일도 아니다. 그간에 많은 탈북의 행렬이 진행되어 오면서 라오스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대처해야 할 충분한 경험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안다. 다시 그런 급박한 위기상황이 왔는데도 어린 생명들의 북송에 대해 속수무책 이었다는 것은 돌멩이를 맞아도 괜찮다고 본다. 대사관 직원들의 말, "최선을 다했으나&ellipsis;"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보도에 나온 대사관의 건물은 화려하기 충분했다. 그 속에서 나라 돈을 먹고 사는 외교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끌려간 탈북 아이들이 저들의 아이와 친척이었다면 백 번도 살렸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북으로 끌려간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밥을 씹어 넘기며 잠을 자기에는 너무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미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저 멀리 끌려간 피 다른 아이들을 놓고 고민해야만 되는가? 그것은 같은 인간적인 연민의 뜻도 있고 동족이란 연대감의 의미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목사와 신학자로서 성서에서 배운 것이 있다. 우선 출애굽 사건에서 하나님은 고역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의 한탄의 소리를 들었고, 모세는 하나님의 고민에 응답하고 나셨다. (출3:23-24). 이사야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향해 "예루살렘을 생각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정의가 동터 오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 어찌 잠잠할 수 있으랴?"라고 한 굳은 선언을 배웠다.

결정적인 또 하나의 배움은 누가복음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다. 강도를 만나서 피투성이 된 채 누어있는 사람을 보고 모든 종교지도자들은 외면해 버렸다. 그러나 구원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던 외국인 사마리아 사람이 피해자의 구출에 뛰어들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이러한 종교지도자들을 보고 에스겔은 "황무지의 여우들"이라고 맹 비난을 날린다.

우리가 북에 끌려간 아이들을 놓고 묵인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사야서 1장에 있다. 당시 종교에 대해 하나님은 더 이상 예배의 제물과 절기의 예배를 꼴도 보기 싫다고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전쟁의 희생물이 된 과부와 고아들을 살피라고 선언한다. 행동 없는 예배는 허상이다. 그래서 현대윤리신학의 기수인 본훼퍼는 "악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악의편이다"라고 외쳤다. "행동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란 야고보서의 맥을 있고 있다.

이제는 북에 끌려간 아이들 앞에서 모든 기독교인들과 한민족은 결단해야 한다. 저들에 대한 아무런 도덕적인 책임행동도 안하고 예배만 드리고 처다만 보는 것은 진정한 교회도 아니고 민족도 아니다. 저들을 위해 소리치지 못한다면 끌려간 저들이나 자유의 땅에 있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도 스스로 노예가 된 것이요, 바보들의 합창을 부르고 있을 뿐이다. 예배 후에 모두 워싱톤에서, 뉴욕에서, 시카고, LA에서 끌려간 저들을 지켜주고 돌려달라고 외치면 한다.

끝으로 북한은 끌려간 아이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북한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살기 좋은 나라라면 저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도록 허락해 주고, 국제사회에 그것을 가시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끌려간 아이들에게 자유가 올 때까지 우리 일어나 소리치면 한다.

공동추천인: 김해종 목사, 김택규 목사, 장철우 목사, 이재준 목사, 송성모 목사

글쓴이: 최영 목사, Randolph UMC WI
올린날: 2013년 6월 5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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