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백수 잔치에 참석했다. 한국 나이로 99세를 백수라고 하니 만으로 98세이다. 2년 후에 백세가 될 분이 걷고 말씀도 잘하시니 참으로 보기 좋았다. 자손들이 하늘의 복을 많이 받으신 어머니, 할머니의 삶을 축하하고 싶어 많은 분들을 초청하니 얼마나 좋은가? 생신을 맞으신 분은 이보다 더 행복한 날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백수자체보다도 그 분이 부러웠던 것은 자서전을 보고 나서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본인이 써서 몇 년 전에 책으로 출판했다니 어찌 대단치 아니한가?
며칠 전에는 노동자의 어머니로 존경 받는 은퇴한 목회자가 쓴 "낮추고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분은 결혼도 하지 않고 6, 70년대에 여공들의 권익을 위하여 살았다. 그들을 위해 싸우다가 감옥에도 여러 번 갔다. 경찰서와 안기부에서 큰 소리도 쳤던 그 분을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부터 드리고 싶다. 그리스도인답게 사셔서 고맙고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도 하고 싶다. 나는 그 분의 이야기가 글로 남아있어 무척 고맙다. 그런 삶은 많은 사람과 나누어야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한 주간 동안에 두 분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서전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인생이 아니면 어떤가? 유명인사가 아니어도 파란 만장한 삶을 살지 않았어도 나눌 가치는 충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으니 실패한 이야기도 나누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아니라도 괜찮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남긴다면 후손들에게도 큰 격려가 될 것이다. 그들도 자서전을 읽으면서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애쓸 것이다.
나는 "자서전"이라는 말만 나오면 할 말이 없다. 숙제를 못한 학생처럼 마음이 불편하다. 오래 전부터 어머니 자서전을 쓰고 싶었다. 우리 어머니는 일제시대 순사의 눈을 피해 떡 장사를 하면서 살았다. 그 때 우리 아버지는 일본으로 징용 가셨다. 해방이 되어 일본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절약 정신이 투철했고 어머니는 이웃과 나누기를 좋아하셨다. 두 분의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머니는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정을 지키셨고 후손들이 어머니의 깊은 이웃 사랑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찌 우리 어머니뿐이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나눌 가치가 있다. 그런데 누가 그분들의 자서전을 쓸 것인가? 자서전을 본인이 쓸 수 있고 쓰고 싶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렇다고 소중한 이야기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장례식 때 떠난 분의 사진을 모아서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살아 계실 때 누군가가 대신 써서라도 자서전을 만들어 축하해준다면 그보다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백수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언제 어느 때라도 좋을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 자서전을 써야 될까? 언제든지 시작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중고등학생들도 자기 자서전을 학생시절에 쓸 수 있다. 오래 살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쓸 이야기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지난날의 이야기만 쓸 것이 아니라 미래에 이루고 싶은 이야기도 쓰면 좋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미래 자서전을 쓰는 것이다. 자기가 장차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쓰면 된다. 소설을 쓰라는 말이 아니고 미래의 청사진을 지금 구체적으로 적어 보라는 말이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전에 살던 동네에 한국에서 "꿈의 학교"라는 곳에 다녔던 학생이 쓴 미래의 자서전을 읽어 보았다. 어떤 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을 한 후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적었다. 그는 대학을 한 곳이 아닌 여러 곳, 그것도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고 싶어했다. 한국, 미국, 일본,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공부하고 싶다고 썼고 그 때 그는 자기의 미래 자서전을 따라 일본에서 공부하는 중이었다. 그 학생의 부모가 잘 알려진 분인데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예수가 쓴 자서전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그의 삶을 눈 여겨 보고 적어서 전해준 것이 네 권의 복음서이다. 앞에서 말한 은퇴한 목회자처럼 예수님도 대단한 열정을 가진 분이셨다. 그 분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셨다. 그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는데 관심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분의 삶으로부터 진한 감동을 받아 그 분 이야기를 써 놓았다. 다른 사람이 쓴 그 분에 관한 이야기는 2천여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감동을 주고 있다.
"판도라 자서전"이라는 것이 있다. "출생과 유년기, 청소년기, 20-30대, 결혼 이야기, 부모가 된다는 것, 중년으로 접어들기, 할아버지, 할머니, 노년을 보내면서, 회상"으로 나누어 해당 제목 밑에 빈 페이지가 있다, 그곳에 자기 이야기를 적으면 된다. 젊은 사람들은 미래의 계획도 기록하면 된다. 우리들이나 우리 부모들의 자서전이 밴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처럼 유명하게 되지는 않아도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보석처럼 여기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아 그런데 내 자서전은 언제 쓰지?
글쓴이: 김용환 목사, 북부보스턴한인교회 MA
올린날: 2012년 9월 2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