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물러서는 지혜

애난데일로 교회를 이전한 후부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렇게 반 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조금씩 힘에 부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사순절 특별새벽기도회를 마친 다음부터 월요일에는 새벽기도회를 쉬기로 했습니다. 두 주 정도 쉬고 보니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싶습니다. 주일 밤에는 새벽기도회 준비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편하고, 월요일 아침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잘 수 있기에 굿스푼 사역에 좀 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어 좋습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그 동안 고집스럽게 미련을 떨었던 것 같습니다.

버클리에서 영성을 공부하던 시절 읽었던 한 수녀님의 글이 떠오릅니다. 수년간 뉴욕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형제자매들을 열정적으로 섬기던 수녀님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짙은 회의가 몰려왔습니다. 수녀님은 그런 자기 자신을 보면서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일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일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회의는 더 깊어만 갔습니다. 소위 '영적 탈진'(spiritual burnout) 현상이 온 것입니다. 기도하고 고민하던 끝에, 수녀님은 낡은 캠핑카를 하나 마련해서 뉴욕 교외의 한적한 숲에서 한 달에 하루 이틀씩 자기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일터에서 벗어나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니, 오히려 다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사역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또한 예전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녀님은 그런 자신의 새로운 생활 질서를 'Withdrawal and Return'이란 말로 정리했습니다.

지나치게 현실에 몰입하다 보면 현실을 잘 감당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매몰되어 버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가끔씩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요령이라는 명분으로 꾀를 부리는 것이야 옳지 않은 태도지만, 적절하게 힘을 분배하고 재충전하는 것은 바람직한 삶의 지혜일 것입니다. '쉼'이 곧 '힘'이 되는 원리라고나 할까요?

저녁 시간, 모처럼 아내와 산책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무더워 탓에 하루 사이에 활짝 핀 꽃들이 바람을 타고 꽃비가 되어 내립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어, 여기도 쑥이 지천으로 깔렸네." 역시 마음이 여유로우니 못 보던 것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정하게 스쳐 지나가던 것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글쓴이: 이현호 목사, 새빛교회 VA
올린날: 2013년 4월 1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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