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무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 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위의 시는 도종환 님의 '겨울나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봄부터 무성했던 잎새들이 여름과 가을을 지내고 모두 다 떨어져 버리고 가지만 남아 있는 겨울철의 나무를 바라보며 허전해 하거나 허무해 하기가 쉬운데, 시인은 겨울에 가지만 남은, 눈에 보이는 나무의 모습만 가지고 나무를 평하지 말고 그 나무가 바로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는 동안 울창한 숲을 이루고 늠름한 산을 이루어 온 나무임을 기억하고 잎새 하나 남아있지 않은 나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시인은 겨울철 나무를 바라보며 그것이 나무 모습의 전부가 아니라 가지만 남아있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나무의 또 다른 모습, 아니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나무의 모습이 있음을 알려주므로 인해 우리네 인생에 대한 평가 또한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는 도전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을 평가할 때 곧잘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인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이렇게 삶에 대한 평가를 지금 보이는 모습으로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교만해 지기도 하고, 반대로 지금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스스로 자학하기도 합니다.

도종환 시인은 그의 시, '겨울나무'를 통해 우리네 삶을 결과론적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삶의 모든 과정 과정을 소중하게 여길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이지만 한때는 잎새가 무성한 나무였고, 그 잎새로 숲을 이루었고, 또한 숲들이 모여 산을 이루어 큰 줄기의 산맥을 지켜온 나무였다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가지만 남았다고 '헛살았다, 잘못 살았다'고 평하지 말고, 더 더욱 그렇게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시인은 나무를 겨울에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겨울에 이르기까지의 모습, 아니 겨울이 이르기 전의 모습을 보라고 합니다. 시인의 지적처럼 겨울에 보이는 나무를 겨울에 보이는 대로만 보기보다는 겨울에 이르기 전의 모습을 나무의 전체 모습의 과정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네 삶도 지금 보이는 모습보다는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또한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겨울나무를 겨울이 이르기 전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겨울에 보이는 나무 그 모습대로도 귀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겨울나무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의 나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이르기 전 나무는 울창한 잎새로 자기와 자기 주변을 가리지만, 겨울나무는 붙어있는 잎새들을 다 떨구어 내어 자기는 물론 자기 주변도 환히 볼 수 있게 합니다.

우리네 삶도 나이가 들어 인생의 겨울이 오면 그 동안 삶을 가려주었던 울창한 잎새 같은 장식들을 떨구어내어 자기는 물론 자기 주변도 환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가 봅니다. 겨울나무&ellipsis;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은 의연함이 있고, 주변을 드러내 주는 여유가 있어 좋습니다.

글쓴이: 이승우 목사, 워싱톤감리교회 MD
올린날: 2013년 1월 4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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