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베인 생활

하와이에서 목회할 때 어느 날 교회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홈리스처럼 보이는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낡은 모자를 쓴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우리 교회가 임대하고 있는 건물의 주인인 Mr. Arakawa였습니다. 이들 형제가 하와이 부동산계를 주름 잡는 사람들이라고 들었는데, 그의 외형적인 모습은 홈리스 차림새보다 더한 것 같았습니다. 건물 사용에 관한 대화 끝에 명함을 한 장 주셨는데, 꺼내든 지갑을 보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저렇게 낡은 지갑을 사용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너무 낡아서 고무줄로 칭칭 감아놓았습니다. 꺼내 든 명함도 물론 옛날 것이었습니다. 전화번호가 다 바뀌었다면서 사용하지 않는 전화번호를 볼펜으로 긋고, 새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더니, 이 사람을 두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돈병철이라 불렀던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골프에 관한 일화(逸話) 중에, 그가 Tee Box에 들어서면 남이 쓰다 버린 Tee를 줍기 위해 주변을 두루 살폈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의 근검절약(勤儉節約)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이 지면이 턱 없이 모자랄 것입니다. Mr. Arakawa와나 이병철 회장이 그런 것 아낀다고 해서 부자와 재벌이 되었겠습니까만, 그들의 절약과 검소함은 그들에게 있어서 몸에 베인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엔 야곱의 형이었던 에서의 행적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냥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에서가, 동생이 길목에 앉아 죽을 끓이는 것을 보고 "그거 좀먹자!"고 했을 때, 야곱은 장자(長子)의 명분을 가지고 흥정을 했습니다. "내가 이 죽을 줄 테니 이제부터 내가 형이 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에서는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다고 태어난 순서가 바뀌겠느냐는 것이 에서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이때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는데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겠는가?"(창25:32)하고, 그 죽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고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이런 에서의 행동을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輕忽)히 여김이었더라."(창25:34)고 표현했고, 에서는 이 일로 방성대곡(放聲大哭)하고 소리 높여 울뿐 아니라(창27:34,38)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된 자"라는 것과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히12:16-17)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죽 한 그릇에 팔아 넘긴 것은 에서에게 있어서 처음 행위가 아니라 마지막 행위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에서로서는 몸에 베인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명분이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적인 현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장자의 명분일 것입니다. 똑 같이 예수를 믿지만, 어떤 사람은 이 이름을 야곱과 같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 이름을 에서와 같이 경홀히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똑 같이 사랑하시고 축복하신다면 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했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말씀이나,(말1:2-3)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는 말씀은,(창25:23)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하나님의 축복의 방법일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입니까?

글쓴이: 유양진 목사, 언약교회 CA
올린날: 2012년 9월 2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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