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해야 하는 설교자로서, 저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제가 받은 은혜와 진리를, 그리고 거기서 경험하는 은혜를 제대로 표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표현하려고 해도 뭔가 부족하고 불완전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차라리 표현함으로써 작게 느껴지는 큰 사랑이 있습니다. 전하기는 해야 하는데, 전하자니 충분하지 않고, 그렇다고 한계를 인정하자니 너무나 큰 진리이기에 적당하게 할 수 없어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연애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사랑이 담긴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해 몇 시간씩 책상에 앉아서 고민하고, 몇 번씩이나 편지를 쓰다가 편지지를 찢어 버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배우자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 어떤 표현이나 단어로도 부족함을 느끼기에 그저 "죽도록 사랑한다"는 위협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이나 "하늘만큼 땅만큼"이라는 일상적인 표현으로 대신하다가도 이내 부족해서 입을 닫는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말하고 표현하면 더 작게 느껴지기에 우리네 남자들이 차라리 표현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면 여자분들이 이해를 하실까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감정이나 사실 조차도 제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표현하려고 하다가도 오해를 받거나 너무 가볍게 전달되는 것 같으면 겪게 되는 상실이나 답답함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 대한 감정, 의심, 공포, 좌절, 느끼는 상실감, 실패와 낙심으로 겪게 되는 갈등 등을 잘 표현하지 못하면 결국 마음이 병들고 몸에도 이상이 옵니다.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홧병이나 우울증은 대부분 여기에서 온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기도생활에서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죄의 현실 앞에서 눈물 흘리며 통회하면서도 그 부끄럽고 수치스런 마음을 어떻게 표현 못해 눈물만 흘립니다. 지금 매우 고통스럽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박한 상황인데도 어떻게 하나님께 구해야 할지, 뭐라 말해야 할지 도대체 말이 입밖으로 나오질 않습니다. 소외감과 외로움에 마음이 눌려 있는 상태에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하나님께 말씀 드려야 할지 말문이 막혀 있습니다. 용서해야 하는 걸 알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나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려서 기도하려고 하는데 생각과 감정이 따로 떨어져 있고, 그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도는 하고 싶은데 어떻게 구해야 할지, 무엇을 구해야 할지, 심지어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무릎조차 꿇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때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답답함이 있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답답함과 표현 못함은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의 그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이제 답답함을 느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기도도 설교도 성령의 도움심이 없으면 안됩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성령이 도우십니다. 우리의 약함을 도우시는 성령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글쓴이: 윤동현 목사, 그린교회 CA
올린날: 2013년 5월 17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