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 룻 1:17/개역개정
나들목교회 김형국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의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하나님이 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곁에 계신 것 같지 않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자꾸 의심이 되었다. 그 기쁨이 지속되지 않고 자꾸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이른바 의리였다. 이미 받은 사랑에 대한 정절이었다. 그것은 '하나님, 당신이 나를 그토록 사랑해 주셨기에 제가 당신에게 충성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붙어 있겠습니다. 이 중심, 놓치지 않겠습니다'라는 결단이었다."
지난 한 주 특별새벽기도회를 진행하면서 살펴보고 있는 룻기를 보면 볼수록 자신을 낳아주신 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룻의 이 의리가 눈에 띈다. 자신이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하나님의 저주를 자청했던 룻은 그야말로 의리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입으로 내뱉었던 고백은 베들레헴에 도착한 뒤로 눈에 보이는 의리로 드러났다. 아침부터 저녁 시간까지 그녀는 시어머니를 위해 대신 일을 했고, 그 양도 결코 적은 양이 아닌 곡식을 주어 왔다. 분명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면서 다시 모압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만도 했지만, 룻은 결코 그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소위 세상의 조폭 세계에도 사나이들의 의리가 있다. 자신을 거두어 준 사람을 위해 때로는 생명까지도 내놓는 의리이다. 그리고 그 의리는 분명 룻기에서 룻이 나오미를 향하여 보여준 그 의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것이 남자의 의리든 여자의 의리이든 결국 어느 한 점에서는 서로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믿음은 의리라고 본다.
과연 왜 오르바는 모압을 택하고 룻은 생전부지의 베들레헴을 택했을까? 룻이 나오미와의 의리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룻기에서 가장 결정적이면서도 감동적인 고백인 1장 16-17절 말씀에서 룻의 의리는 결코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바로 눈에 보이는 나오미를 향한 것이었다. 모압 여인으로 룻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당시 베들레헴에 살던 그 어떤 유대인들보다 부족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의리가 있었다. 그 의리는 자신이 아직 잘 알지 못하는 하나님에 대한 의리까지 확대되었고, 자신을 개처럼 여기는 사람들까지도 수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예전에 중국 무협 영화 혹은 한국 고전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형제애 혹은 의리는 근래에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이내 뱉어버리는 작금의 사회 분위기에서 의리는 그 자리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리있는 사람을 분명 좋아하신다고 믿는다. 풀부불의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며 그들의 의리를 하나님 앞에서 과시했다. 왕 앞에 함부로 나가면 죽는다는 것을 잘 알았고 그래서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망설였던 에스더 왕비는 삼촌 모르드개의 지적에 발끈하여 의리있게 행동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말을 뒤에 남기며 왕 앞으로 나아갔다. "죽으면 죽으리로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의리를 지닌 사람들이 참 좋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의리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 물론 그런 의리를 지키며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삶의 자리임도 분명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의리를 가진 자들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위로하며 격려하시는가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 마 10:32-33
글쓴이: 최호남 목사, 어바나예수사랑교회 IL
올린날: 2013년 9월 9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