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한 교우님께서 카카오톡을 통해 보낸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글이어서 더 그러했습니다. 게다가 그분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250년 전에 태어난 분이어서 더 감동이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남양주에 있는 [다산 기념관]이 마침 자주 가는 수양관 가는 길에 있어서 몇 번 들렸던 기억이 있어 더더욱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게다가 그때 구입했던 그분에 관한 책을 다시 읽어보니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착각까지 들어서 감사했습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실학자인 정약용은 당시 가문이나 개인으로 볼 때 그야말로 전도유망한 젊은 선비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이른바 팔대옥당(八代玉堂)이라 불린 명문가로 홍문관 관리를 8대 연속으로 배출하였고, 그 자신도 20대에 대과까지 패스하여 당시 병조참의(국방부국장), 부승지(대통령비서) 등을 역임하며 탄탄대로를 달렸습니다. 게다가 정조 임금의 신임까지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나이, 서른아홉 살 때부터 그야말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주군인 정조가 갑작스레 사망한 것이 그 시초였습니다.
정조가 승하 하자마자, 정순황후로 인해 생긴 당파싸움의 표적이 되면서 '서학쟁이' 즉, 천주교신자라는 죄명으로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정약용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 전체가 사실상 멸문지화를 당합니다. 둘째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셋째 형인 정약종과 매형인 이승훈(조선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은 사형을 당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수난은 무려 18년 동안 이어져, 경상도 장기현(포항)과 전라도 강진군에서 유배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결코 짧지 않은 18년의 수난 생활에 대한 정약용의 독특한 대처법입니다. 이것을 훗날 역사학자들은 '승리를 향한 날갯짓' 이라고까지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조의 죽음과 함께 맞이한 인생의 내리막 길을 걸었지만 이후에 오를 오르막 길을 상상하면서, 유배지에서 18년을 그렇게 날갯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특이한 것은, 그 날갯짓이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입니다.
그의 날갯짓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누군가를 향해 복수의 칼을 갈거나, 언젠가 다시 정계에 복귀하려는 소위 반체제인사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때를 오히려 철저하게 자신을 향한 철학적 통찰과 자기완성을 위한 영적 깨달음의 시간으로 만듭니다. 사실 그가 처한 유배지의 삶을 생각하면, 차라리 하늘을 원망하거나 스스로 문을 닫고 칩거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면, 그는 장기현에서 <촌병혹치>라는 의학책을 썼는데, 병에 걸리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뱀을 잡아먹는 무지한 주민들을 위한 배려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자, 남아있는 아들에게 쓴 <여유당전서>를 통해 자녀를 향한 아버지로서의 잔잔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아들아, 이제야말로 진정 공부할 때가 되었다. 가문이 망했으니, 오히려 더 좋은 처지가 된 것이 아니냐?" "학자에게는 가난이 축복이니 자신을 수양하면, 난리 속에서도 반드시 진보할 수 있으니 환경이 문제가 아니니라" 등.
무엇보다 그의 날갯짓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민들과 함께 하려 했던 그의 마음과 그것을 글로 표현한 거의 전투적인(?) 글쓰기였습니다. 그는 양반이었지만, 당시 백성들이 주업으로 삼았던 농업과 상업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해서든지 공유하려고 했고, 그러한 마음을 쓴 책이 18년 동안 무려 500권이었으니 유배지에서의 삶의 열정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잃고 게다가 지루한 귀양생활 중에도 스스로를 다스리고 이웃을 배려하면서,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노력이 참으로 놀라울 정도입니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 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 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생각이 깊은 자여! 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교우님이 보내주신 다산(茶山)의 시입니다. 사람 산다는 게.... 그렇게 힘들고 매몰차고, 아무 감동도 기쁨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와 다른 사람에 대해 넉넉한 마음으로, 어려운 때 일수로 깊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날갯짓이 필요한 때입니다. 조선 최초, 익명의 크리스천이었을 그가 그립습니다.
글쓴이: 장찬영 목사, 남부플로리다한인연합감리교회 FL
올린날: 2012년 8월 1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