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같은 사람

며칠 전에 책장을 정리하다가 오래 전에 쓴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펜으로 써내려 간 글체를 보면서 그 날의 제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듯 했습니다. 목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설교 원고도 한 문장, 한 문장 손으로 썼는데, 이제는 글을 쓰려면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아야 글귀가 떠오릅니다. 메모 혹은 일기마저도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에 기록을 합니다. 이렇게 기록된 것은 보관도 잘 될 뿐 아니라, 오타가 나지 않는 한 그 내용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손으로 썼던 일기나 혹은 원고의 종이가 누렇게 바래져서 뭐라고 썼는지 알 수 없기도 하고, 또한 원고지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한 글체를 알아볼 수 없기도 하지만, 왠지 그 원고지에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사람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도 별로 쓰지 않는 연필 대 여섯 자루를 잘 깎아서 책상 펜통에 꽂아 놓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책을 읽을 때 혹은 메모를 할 때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연필처럼 살라고 한 어느 선생님의 인생의 귀한 교훈을 되새겨 봅니다.

첫째로, "네가 이 다음에 커서 큰 인물이 되었을 때, 그 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너에게 있음을 기억하라." 연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손에 붙들려 있지 않으면 연필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연필이 내 손에 들려져서 글을 쓰는 것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둘째로, "연필을 쓰다 보면 가끔 쓰던 것을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연필을 깎는 것은 연필의 입장에서는 많이 아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연필심을 더 예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연필을 깎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연필에는 지우개가 달려 있는데 잘못 쓴 것을 지우기 위함이다."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연필에는 지우개가 달려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씻을 수 없는 부끄러운 상처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덮어버리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지우개는 참회와 같은 것입니다.

넷째로, "연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필심을 둘러싸고 있는 외피가 아니라 바로 연필심이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외형의 모습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항상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이 마음속의 소리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외형을 치장하기에 바쁩니다.

다섯째로, "연필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연필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주님이 쥐고 있는 몽당연필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연필을 자를 수도 있고 깎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무언가 쓰고 싶으면 쓰시고, 그리고 싶으면 그리실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자신을 보잘것없는 몽당연필이라고 했지만, 그 분은 영적으로 거목이셨습니다. 이 분은 연필의 교훈을 분명히 알고 실천하셨던 분이십니다.

글쓴이: 이성현 목사, 드림교회 CA
올린날: 2012년 8월 6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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