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구원은 없다

인스턴트(instant)라는 단어는 주로 음식에 붙여져 불을 피워 요리하지 않고 즉석에서 먹을 수 있게 하거나, 예를 들면 전자렌지에 넣고 1-2분이면 먹을 수 있는 것, 또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즉석에서 식사할 수 있게 만든 식품에 붙여 간편하고 빠르다는 뜻으로 쓰인다. 점점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세상의 스피드에 맞추어 살아야 할 처지가 된 맞벌이 부부에게, 건강에 좋지 않다느니 하는 논쟁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가정을 돌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인스턴트 식품들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회는 산업화를 지나면서 ‘빨리 빨리’라는 유명 단어가 입에 붙게 되었고, 해외의 왠만한 외국인들도 이 말을 많이 들어 알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마음도 급하고, 때문에 여유가 없어 진득하게 기다리며 살 수 없는 문화가 한국인들에게 자리잡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한국사회에는 ‘속성과정’이 인기가 있다. 잠을 못자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밤을 새워서라도 빨리 끝내면 ‘굿’이다. 그래서 한국의 건설업 분야에 항상 따라다니는 말이 있었다. 예정보다 빨리 끝냈다는 뜻의 ‘공기단축’ (工期短縮)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한국사회 문화는 시간단축의 ‘인스턴트’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 신앙에서도 ‘공기단축’과 같은 인스턴트 신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기독교 신앙이 마치 하루아침에 천지개벽하듯 새 사람을 만드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으로, 또는 신앙의 핵심인 구원을 이루는 것도 마음 먹기고 결심하기만 하면 즉시 구원된다고 믿어 하루 아침에 거룩한 ‘성도’(聖徒)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고 믿기도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빨리 빨리 집사 권사 장로가 되어, 빨리 빨리 교권의 높은 자리로 이동하고 싶은 열망도 높은 것 같다. 목회자가 되려는 이들도 빨리 빨리 목사 안수를 주겠다는 교단을 찾기도 하고, 실제로 단 일 년 만에 목사가 되었다며 나타나는 사람들도 허다한 지경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 모두 ‘빨리 빨리’라는 조급한 마음이 신앙 속에 스며들어 ‘인스턴트’ 신앙을 찾아 나서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인스턴트적 신앙은 설교에서도 나타나는데 곰국처럼 진한 국물을 우려내 맛을 내는 설교도 있지만, 조미료와 향신료를 써서 곰국 맛보다는 조미료와 향신료 맛에 취하게 하는 경우가 흔하고 흔하다.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얻고자 자극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성경 본문의 깊은 의미보다는 입에 착착 감기는 재미난 이야기, 동화 같고 에세이 같은 느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진리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사람의 말로 마음을 움직이려 하는 기술들은 하나님 말씀의 곰탕 맛이 아니라 세속적 조미료 맛에 길들여지게 만든다. 그래서 설교 내용을 분석해보면 일관성을 찾기가 어렵고, 성서적 근거를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모두 인스턴트 효과를 내려는데 열중한 탓이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진수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극적 조미료를 써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 감칠맛 나게 하는 요리라고 생각한 탓이 크다.

설교를 듣는 청중들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며 진한 맛을 느끼려 하기보다는 혀끝에 닫는 자극적 맛을 선호한다. 입에 넣자마자 느낌이 와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잃어버렸고, 잠깐 잠깐 잠을 깨울 수 있는 환각제 같은 자극을 원한다. 그래서 무심결에 신앙은 잠깐 잠깐 잠에서 깨어나는 환각제로 완성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배워왔고, 그 믿기만 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 혹은 결심이라고 생각하지 변환된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간이 걸려 구원을 이루어가는 일을 생각할 수 없다. 즉각적인 인스턴트 구원을 원한다. 악마의 노예로 살았고, 어둠의 지배 아래 살았던 죄인인 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 구원을 완성하는 영적 삶을 살아가는 일이 어찌 그리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뼛속 깊이 뿌리 내린 죄의 뿌리가 어찌 그리 쉽게 해결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며 공부하고 배우며 훈련받지 않았던가. 초대교회는 하루아침에 성령받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직접 계획하고 준비하며 사람들을 불러 가르치고 훈련시켜 기초를 다져 세우신 것이다. 가르침과 훈련 그리고 시간만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을 내놓는 엄청난 비용을 들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2천 년이 넘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완성된 교회는 없다. 다만 계속 세워져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인스턴트로 세워진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시작했어도 우리는 평생 수도 없이 죄의 유혹을 받는다. 그 죄의 뿌리는 질기고 질겨 뽑히지를 않아 조금만 방심해도 불쑥 머리를 내미는 것임을 모를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신앙은 그 때마다 발견하는 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가는 인생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조건으로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하셨던 것이다. 따라가면서 죄가 발견되면 자기 십자가에 못 박고 또 박으라는 뜻이다. 그러니 기독교 신앙의 길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십자가를 지듯이 엄숙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십자가가 어찌 인스턴트로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많은 이들이 십자가 목걸이를 애용하고 있어서 십자가를 인스턴트로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한 사람의 인격을 건강하게 키워내기 위해서는 아이가 엄마의 자궁 안에 있을 때부터 교육을 시작한다. 좋은 느낌을 많이 느낄 수 있도록 산모들은 여러 태아교육 자료를 섭렵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말을 가르치기 위해 엄마는 긴 시간 동안 아이와 대화를 시도하며 독백처럼 수다를 한다. 유치원을 다니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다 경험하게 하려고 부부가 갖은 애를 다 쓰며 아이를 데리고 좋은 곳을 찾아다닌다. 학교에 가면 한국의 경우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과정을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으로 마치도록 부모와 아이가 혼신을 다한다. 미국의 경우 이 과정 전체를 국가가 책임지고 무상으로 교육한다. 이렇게 하여 세상에 진출하여 한 사람의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간다. 그래도 부족하여 ‘평생교육’ 혹은 ‘연장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공부하고 자신을 개발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밀려난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자기를 거듭나도록 훈련한다. 이 것이 일반 자연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력이다.

하나님의 자녀, 하늘나라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는 것일까? 성경을 읽어보라, 특히 예수님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복음서를 읽어보라 그 어디에도 교회만 다니면 저절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은 없다. 오히려 예수님은 당신의 가르침을 율법의 완성으로 말씀하셨고, 바리새인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윤리적 삶을 요구하셨다.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된다는 원시적 신앙이 아니라 강도 높은 영적 훈련을 요구하신다.

불교에서 수행하는 방법과 도를 깨치는 법에 대해 ‘돈오돈수’ (頓悟頓修) 와 ‘돈오점수’ (頓悟漸修) 논쟁이 있다. 진리를 단번에 깨쳐 공부와 훈련을 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돈오돈수라는 뜻이고, 긴 수행의 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공부하고 깨달아 진리를 깨닫는 점진적 과정을 돈온점수라 한다. 그런데 사실 둘이 서로 말은 다르게 하지만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돈온돈수도 수행하여 공부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돈오점수도 공부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깨우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에서도 돈오돈수가 있고 돈오점수 둘 다 있다. 순간적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 구원을 계속 이루어가야 하는 훈련과 실천이 남아 있는 것이다. 또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예배하고 성경공부하며 봉사하고 섬기는 훈련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믿음이 자라고 자신의 구원받은 새로운 피조물인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두 방법은 같은 길이지 다른 길이 결코 아니다.

나는 새로운 신자가 오면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며, 삼 년 정도 열심히 공부하면 진리를 좀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삼 년 정도 열심히 예배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섬기는 일을 해보라고 권한다. 왜냐하면 진득하게 꾸준히 믿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몇 번 교회에 나오다 재미 없어서 그만 두겠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앙은 평생을 걸어가는 구원의 길이다. 도중에 내려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학교를 다니다 정해진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지루하다는 이유나 힘들다는 까닭으로 그만 둔다면 졸업장을 받지 못한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진행을 할 수 없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꾸준히 참고 기다리며 예수님을 따라 가면 언젠가는 깨닫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중학교도 3년을 다녀야 하는데 그것도 열심히 책 읽고 공부하면서 결석도 하지 않고 말이다. 인생을 구원하는 일인데 그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 구원의 문제를 풀려고, 지독한 인간의 문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회에 입문하면서 인스턴트 신앙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문제를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경솔함이다.

교회가 사람의 마음을 쉽게 얻고자 인스턴트 신앙과 구원을 계속 선전한다면, 그 일은 세속화 신앙로 치닫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신앙을 평생 배움의 길이라 이해하고 믿음의 길을 간다면, 날마다 깨달음으로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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