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살아실 제

조선시대 유학자인 송강 정철의 <송강가사> 에 부모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읊은 시조가 하나 있습니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 "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그 소중함을 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자식들의 모습입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시며 길러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감사를 모르고 사는 경우도 참으로 많습니다. 부모이기에 자식에게 해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자신이 부모가 되어 자식 때문에 속도 썩어 보고, 나름대로 인생의 파고를 겪다 보면, 그제야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때늦은 후회를 하기 이전에 섬김을 다하라고 송강은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도 우리가 이 시조를 떠올리며 공감하는 까닭은 여전히 자식으로서 그 도리를 다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아이가 아버지의 심부름을 억지로 하고 난 뒤, 심통이 나서 자신이 한 심부름에 대한 대가로 얼마의 용돈을 달라며 청구서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청구서에 요구된 돈을 아이에게 건네 준 다음에 아들에게 이러한 요구가 담긴 쪽지를 주었습니다. 엄마가 너를 가졌을 적에 열 달 동안 고생한 값이 얼마이고, 네가 그 동안 먹었던 밥값과 숙박비, 그리고 입은 옷 값, 학교 등록금이며 학용품에 들어간 모든 비용 등이 그것입니다. 아이가 모든 것을 합산해 보니 그 금액은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액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이 아이처럼 부모님으로부터 갚지도 못할 커다란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음에도 그 감사를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여 부모님이 다른 형제를 편애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말입니다. 이는 흡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비슷합니다. 우리 삶의 굽이 굽이마다 함께 하시며 넘치는 자비와 축복으로 인도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습은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서야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명의 창조주이자 운행자이신 하나님의 역사 앞에 숙연히 고개 숙이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힘 있을 때 섬김을 다할 걸' 하며 후회한들 인생은 되돌이킬 수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효도는 시간 남고 여유있을 때나 하는 인생의 부수적인 의무가 아닙니다. 때늦은 회개가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행할 수 있을 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사는 우리가 자녀답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자, 살아실 제 섬길일란 다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글쓴이: 권혁인 목사, 버클리한인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3년 6월 17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관련

선교
정희수 감독이 샌디에고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한인목회강화협의회 2018년차 회의 개회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다. Photo by Thomas Kim, UMNS

가라 하신 깊은 곳

"깊은 곳, 그곳은 두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길입니다.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길입니다. 그동안 알았던 모든 공식이 통하지 않는 변혁적인 도전 앞에서 주님은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정희수 감독의 한목협 2018년 연차회의 개회예배 설교전문.
사회적 관심
백두산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두손을 잡았다. KBS 화면 캡쳐

우리 시대에 평화? 한국의 진전을 축하하며

위스콘신 연회의 정희수 감독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다. "Peace in Our Time" by Bishop Jung in English and Korean.
사회적 관심
Goodbye-reunion at Mt. Diamond in N. Korea in 2018. MBC TV screen capture.

희망의 시작 '작별 상봉(作別 相逢)'

'180초짜리 만남'이나 '작별 상봉'은 헤어짐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을 알리는 만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