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기억하기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제가 기억하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어머님은 찬송 가방을 늘 곁에 두고 사셨습니다. 현대식의 멋진 핸드백은 아들들 결혼식 때 장식품처럼 몇 번 들어 보셨을 뿐입니다. 어머님에게는 그런 멋을 낼 여유가 따로 없었습니다. 찬송 가방이 전부였습니다.
그 안에는 성경과 찬송이 제일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물건들이 그 안에 담겼습니다. 젊었을 때는 값싸고 조잡한 화장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방 안에서는 묘한 향기가 났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들이 챙겨 주는 용돈이 그 안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헌금도 하고, 필요한 일에 쓰기도 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는 예배 때마다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던 손수건도 중요한 필수품이었습니다.
찬송 가방이 가장 유용하게 쓰인 것은 잔치 집에 갔을 때입니다. 먹을 것이 귀하고 값비싸던 시절에 어머님은 잔치 집에 갔다 올 때면 꼭 무엇인가를 가방에 넣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잔치 집에서 돌아오실 때면 네 형제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가방을 뒤지곤 했습니다. 그 때는 찬송 가방이 아니라 보물 가방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월을 따라 역할을 달리하던 찬송 가방이 마지막으로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았습니다. 몇 주일 전, 치매가 깊어지신 어머니가 네 시간 정도 실종된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잠시 다른 일을 하시는 동안에 어머니께서 집을 나서신 것입니다.
어머니에게는 허리 통증이 깊습니다. 그래서 10미터도 채 가지 못해 주저앉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가 집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했는데,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자주 친정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아마도 그 마음으로 집을 나서신 것 같습니다. 경찰과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서서 수색한 끝에 밤 아홉 시 즈음에 어느 집에서 쉬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효심이 지극한 막내가 휴대용 GPS를 찾아냈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만약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 찬송 가방에 심어 두었습니다. 어디를 가시든지 찬송 가방은 늘 챙겨 가지고 다니시기 때문입니다. 시험 작동 결과가 대만족이라고 동생이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평생 어머니에게 끌려 다니던 찬송 가방이 이제는 어머니를 보호해 줄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찬송 가방은 믿음에 대한 좋은 비유가 될 것 같습니다. 한창 때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믿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을 붙들고 살다 보면, 마침내 그 믿음이 나를 붙들어 줄 때가 옵니다. 다만, 의식이 망가져도 찬송 가방만큼은 꼭 챙기는 어머니처럼, 믿음이 우리의 분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곤고한 날에 우리를 구해 줄 것입니다.
글쓴이: 김영봉 목사, 와싱톤한인교회 VA
올린날: 2013년 2월 26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