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보다 좀 더 ‘쎈’ 사랑의 힘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멀리 중동지역이나 아프리카, 혹은 북한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평화가 아닌 싸움의 이야기들입니다. 때로는 나라와 나라가, 민족과 민족이, 그리고 여러 단체와 그룹들이 싸우고, 이웃들과 일가친척 심지어는 가정 안에서도 다툼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를 찿아보려고 가만히 분쟁의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양쪽 다 일리가 있습니다. 양쪽 다 옳습니다. 심지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도, 그리고 독도를 뺏어가려는 일본의 주장도 모두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논리를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집단 대 집단의 갈등은 양보할 수 없는 집단의 이익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만 모든 분쟁의 근원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영향인 것이 태반입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 갈등은 늘 자기 생각만 옳고 남들은 다 틀렸다고 여기는 마음들이 부딪혀 결국 상처와 아픔으로 이어지는 싸움이지요! 인간의 삶은 정의로와야 합니다. '옳고 바른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잘 파악하여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옳고 그른 것만을 지적하고 끝난다면 결코 피차가 원하는 '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분쟁의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양심의 변화를 일으키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힘은 '정의'보다는 오히려 '사랑'의 표현이 시작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아이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아이에게 잘못한 것만을 가르치려 섣불리 꾸짖다가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지요. 아이가 비록 자기의 잘못을 알아차린다 할지라도 아이의 마음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사랑의 언어로 그 잘잘못을 차분히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아이의 마음이 '덧나게'(worsen) 되지요. 하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아이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 달라집니다. 그리고 아이로 하여금 그 잘못에 대하여 용서의 '황홀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이는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아이들도 이럴진대, 우리가 장성한 어른이 되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치 일방적으로 다그쳐서는 그 잘잘못이 개선되지 않습니다. 잘못이 보일 때 그것을 즉각적으로 지적하여 개선되는 인간관계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모두 자존심의 존재이기에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 앞에서는 반드시 고개를 숙이게 되어 있습니다. 감동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지요. 사랑의 감동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돕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 두 가지 모두를 완벽하게 실현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정의와 사랑이 상충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마치 컵에 물을 붓든 것과 같다고 합니다. 컵에 신선하고 상큼한 물을 정확히 부어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것, 바로 그 것이 하나님의 정의라면 그 컵에 은혜의 생수를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정의와 사랑, 모두 중요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정의보다 사랑을 조금 더 부으십니다. 사랑을 부어 정의를 감싸안고 정의를 넘어서는 참된 생명과 평화의 힘으로 정의가 진정으로 꽃피우고 열매 맺도록 일하십니다. 정의로만 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잘못을 싹 쓸어 버리기 위하여 우리 모두를 꾸짖고 징계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성자 예수를 보내시어 그의 희생과 죽으심으로 세상을 용서하시고 끌어 안으셨습니다. 바로 그 때에 세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진정으로 '의'가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랑으로 정의를 꽃피우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기쁜 소식, 사랑과 정의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어떠십니까? 자랑스럽게도 제가 아는 여러분은 참으로 옳고 훌륭한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옳고 훌륭한 생각에 사랑의 행위를 더해 보십시오. 그러면 정말로 '의'가 살아납니다. 바로 오늘, 이 사랑의 능력을 체험해 보십시요!

글쓴이: 황헌영 목사, 남부시카고한인연합감리교회 IL
올린날: 2013년 1월 2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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