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 보면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결혼에 대해 압박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남들은 그 나이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데 왜 너는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거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자녀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떤 자녀들은 결혼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까지 한다. "결혼을 꼭 해야 합니까?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데..."
남자나 여자가 결혼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결혼하지 않을 때 뭔가 모자라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는다. 남자의 경우 능력이 없거나 성격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에 혹은 무절제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의심을 받고, 여자의 경우 매력이 없기 때문에 아니면 생각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 거라는 의심을 받곤 한다.
과연 그럴까?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다 비정상인 사람일까? 기독교인의 경우 꼭 결혼을 해야만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정상적인" 신자가 되는 것일까? 성경에 보면 독신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일을 충실히 잘 감당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대표적으로 예레미야 선지자를 들 수 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결혼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고(렘 16:2) 그런 이유로 독신의 상태에서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이 내리실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이유로 극한 고난을 당한 것을 고려할 때 왜 하나님이 그에게 독신생활을 명령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루디아라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바울의 사역을 최선을 다해서 도운 사람이다. 그런데 이 루디아는 옷감 장사를 하는 사업가였는데 남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 독신의 상태로 주님의 일을 도왔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반면에 결혼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일을 충실히 감당한 예들도 많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주님의 사업을 위해 일곱 집사 중 하나로 선택되어서 복음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한 빌립을 들 수 있다. 그는 결혼하여 가이사랴 지방에 살았던 사람이다. 사도행전 21:8-9절에 보면, 빌립에게는 딸이 네 명 있었는데 모두 예언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로 비추어 보건대 빌립은 분명히 경건한 가정을 이룬 상태에서 하나님을 섬긴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 보면 결혼과 독신의 문제에 대하여 서로 상반되는 듯한 구절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 2:18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결혼을 하는 것이 태초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7:7-8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또 마태복음 19:11-12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평생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질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여기서 "고자(eunuch)"라는 단어는 독신으로 지내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세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태어날 때부터 고자인 사람, 즉 생물학적인 이유로 처음부터 이성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는 사람을 말한다. 둘째는 사람의 실수에 의해 고자가 된 사람이 있다. 원래는 이성에 대한 욕구가 있지만 어떤 사고나 병으로 인해 중간에 결혼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이다. 셋째는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가 있는데, 이성에 대한 욕구도 있고 충분히 결혼하여 자녀를 낳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스스로 독신생활을 선택한 사람의 경우이다.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나 수도사들, 수녀들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자 그러면 창세기에서는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고 고린도전서나 마태복음에서는 그냥 독신으로 지내는 것도 좋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떤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야 할까?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우리 자녀들에게 뭐라고 말을 해주어야 할까?
우리는 독신을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은사(gift)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하신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는 삶의 원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독신으로 지내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사, 즉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한 어떤 특별한 소명으로서의 독신생활이 가능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9:12절에서 독신의 은사를 가리켜 "받을 만한 자는 받을 지어다"라고 한 것이고, 고린도전서 7:7절에서는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라고 하면서 독신생활을 각자의 임의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로 규정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의 개념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그것은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신 분의 의도에 맞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사는 개인적인 만족이나 유익을 위해 사용될 것이 아니라 교회에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도움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 잘 부합하는 것으로서 가톨릭교회의 신부나 수사들, 교회 사역을 위해 재혼하지 않는 과부들, 위험한 선교지에 들어가서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들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독신의 상태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눈이 너무 높아서 혹은 정말 맘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결혼 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 아니면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독신생활을 선택하는 경우는 성경에서 말하는 독신의 은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사람은 배우자를 찾아서 결혼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독신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이해해도 좋고, 그런 사람은 독신의 상태를 유지하며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글쓴이: 홍삼열 목사, 산타클라라한인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3년 11월 4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