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와일드의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던 예수님은 어느 날 술에 만취한 한 청년을 만나 그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 청년이 말하길 자기는 원래 앉은뱅이였는데 예수라는 분이 날 치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이렇게 방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잠시 후 예수님은 탐욕과 정욕에 눈이 어두워 한 여자를 쫓아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또 물어봅니다. "당신은 왜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나는 옛날에 소경이었는데 예수라는 분이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결국 그들의 삶 속에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앉은뱅이나 소경이었을 때보다 더 불행한 삶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으면서 이 때만 감사의 조건을 찾아 나선다는 게 부끄럽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생깁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를 지키라는 말씀을 강조하신 이유가 바로 저 같은 사람들 때문인 듯싶습니다. 늘 그렇게 살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이 절기 때만이라도 믿음을 회복하고 잃어버렸던 감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가르침이라고 여겨집니다.
한 성도가 혀에 암이 생겨 혀 절단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수술하기 직전에 의사가 "최후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하고 제안했습니다. 이제 혀가 잘리면 다시는 말을 못하게 됩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 성도가 드디어 입을 열어 세 마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을 하면서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가 평생 말을 못하게 될 때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이 말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시간에 우리가 해야 할 말 또한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래도 우리에겐 아직도 남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없어진 것에 대한 서운함, 부족함에 대한 원망, 모자람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 남아 있는 것, 여전히 나와 함께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야말로 내가 살아있는 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노래가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글쓴이: 주활 목사, 솔즈베리감리교회 MD
올린날: 2012년 11월 29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