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웨슬리에서 공부할 때였습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의 첫 학기 수강신청을 할 때, 선택과목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공과목을 이수하기도 빡빡했기에 굳이 다른 과목을 들을 이유는 없었지만 그 과목 이름을 보고 거의 충동적으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목이 이름이 'Writing Autobiography'(자서전 쓰기)였습니다. 사실 처음엔 뭐 이런 과목 이름이 있나 하는 궁금증과 동시에 솔직히 학점 받기가 좀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과목은 저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Dr. Lew Parks 교수께서 가르치신 이 과목은 단순하게 생각했던, 때우기 용이한 선택과목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는 두 학기로 연장되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논문의 주제를 정하게 되었고, Parks 교수님은 훗날 제 박사논문 지도교수가 되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과목은 애초부터 한 학기에 끝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과목 이름이 그래도 [자서전 쓰기]인데, 아무리 젊다 하더라도 한 학기, 몇 달 안에 자서전을 쓰기란 불가능하였고, 짧은 인생도 막상 회상하고 더듬어 보려니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첫 학기는 자서전의 이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개괄적 관찰이었습니다. 그러니 또 한 학기를 안 할 수 없었고, 일 년 내내 저는 당시 [36년, 목사]라는 제 삶의 시간을 돌아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인생 돌아보기는 처음에는 통(total)으로, 다음에는 연령(age)별로, 또 각 시대마다의 변화(accident)를 중심으로 접근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물(figure)별로 검색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인생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제(subject)별로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주제별 인생 검색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기쁨(?)의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기쁨으로 결론지어졌지만, 그 과정은 아프고 시리고 고통스런 시간이었습니다. "언제 행복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저는 거짓 자서전을 쓰고 있었고, "언제 슬펐느냐?"에 대한 질문 앞에서도 마치 두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의 왜곡되고 숨겨진 부분이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게다가 목사까지 된 저에게 이런 부분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정직하게 자기를 보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감정처리 미숙아였던 것입니다.

그 후, 한 해 동안 진행된 자서전 리포트는 몇 번의 퇴짜를 맞으면서 골격을 잡아갔고, 그 가운데 저는 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인생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행복론]은 제가 얼마나 참 행복에 굶주려 있었는지를 여실히 볼 수 있었던 주제였습니다. 이후 내면의 채워짐은 사람을 좋아하고 신뢰하는 관계의 회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행복함에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쫓김 현상에서 이젠 주어진 행복을 즐기는 구도자적 인생에 눈을 뜨는, 그야말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소원을 물으면, 하나같이 얘기합니다. "행복하고 싶다"고. 더 오래 살고 싶거나 더 부자가 되고 싶다가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을 경험할수록 참 행복에 대한 갈망이 더욱 분명해 집니다. 세상의 어떤 누구도, 그 무엇도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없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소유하거나 조작되는 것도, 큰 것이나 위대한 것, 값 비싼 것도, 더욱이 그것은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의해서 채워지는 것이 아님을. 그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나'라는 항아리 안에 '숨겨진 보물'이기에 분명 그러합니다.

그래서 "언제 행복했냐?"는 질문은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 그때 무엇 때문에 행복했냐?"를 다시 묻게 되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그때 나를 행복하게 했던 그것은 지금의 나를 전혀 행복하지 못하게 함입니다. 즉, 행복은 본질적으로 환경과 조건의 문제가 아닌, 내 안에 처음 행복이란 씨앗을 디자인하고 심어 놓으신 그 분과의 관계에 있음입니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서 놀란 것은, 그것은 나보다 내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그 분을 발견한 것은 자서전의 가장 놀라운 반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행복한 삶의 발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짓 행복을 찾다가 지친 영혼이 참 행복을 찾아 기뻐하는 것, 바로 거듭남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 저런 것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한 인생이 아닌, 묵묵히 든든한 삶의 자리를 잡아갑니다. 그리고 사람과 조건, 사건과 환경에 반응하는 인생이 아닌, 부르심과 사명, 그 길에 집중하는 삶을 삽니다. 우리는 이 사람을 가르켜 '제자'라고, 아니 '행복한 제자'라고 부릅니다. 이왕에 제자가 되려면, 행복하게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행복한 숙제일 것입니다.

글쓴이: 장찬영 목사, 남부플로리다한인연합감리교회 FL
올린날: 2012년 10월 11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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