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것 가운데 그림이 있습니다. 램브란트의 그림이나 피카소의 그림은 그림에 담긴 이야기 때문에 더욱 좋아하게 되었고, 특별히 빈센트 반 고흐와 모네의 그림은 색감 때문에 좋아합니다. 화가가 대상을 바라보면서 빛의 농도에 따라 변화하는 사물의 느낌을 표현해 놓은 작품들이 저의 눈빛을 통해 가슴에 내려앉습니다. 마치 빛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서 그림 앞에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림의 배경이 된 그 장소, 그 때의 화가의 감정과 느낌이 전해지는 착각을 갖고 행복을 누립니다.
사실 처음 미술사에 나타난 그림들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미술의 역할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실주의 화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874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에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라는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그림은 항구에서 해가 막 떠오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실주의 화법으로 대상과 장면을 정확하고 정교하게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작가의 느낌과 감정이 드러나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루이 르로이는 '르 샤리바리Le Charivari'지에 비평의 글을 남기면서 "그건 풍경이 아니라 개인적 감상을 그렸다. 모네씨, 르누아르씨, 드가씨는 아무래도 '인상파'라고 불러야겠다"고 비평했습니다. '인상파'라는 이름은 이렇게 나왔고, 그 당시 사람들로부터 그림 축에도 들 수 없다는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림이란 있는 그대로 묘사되어야 한다'고 믿어왔던 사람들에게 화가의 느낌과 생각을 담은 그림은 비난과 야유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인상파 화가들은 회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서양회화는 계속적인 변신을 거듭하다가 '피카소'가 활동하던 금세기에는 '인간의 생각을 그림에 반영한다'는 것이 더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대로 묘사되어야 한다던 회화의 기법은 사진기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비난받던 작품들은 오늘날 전세계인이 사랑하는 명작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 시대의 대표적인 가치관, 관습, 사고 등이 바뀌는 것을 토마스 쿤(Thomas Kuhn)은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 교체에 의해 혁명적으로 이뤄지며 이 변화를 "과학혁명"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19세기 과학계를 지배하던 고전물리학이 20세기에 들어와 상대성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에 자리를 내어준 것처럼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말했습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과학이나 미술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와 개인의 삶에도 일어날 수 있고 또한 일어났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사건이나, 모세를 떨기나무에서 부르신 사건,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바울을 부르신 이야기 등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킨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오직 할례와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함을 받는다고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던져진 패러다임 시프트였습니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은 시대를 이끌던 카톨릭에게 경종을 일으키는 사건이자,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이 읽혀지도록 주어지고, 각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얻을 수 있음을 깨우쳐는 사건이었습니다. 카톨릭의 신앙과 교리에 묶여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이것은 혁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들이 오늘의 우리를 이곳에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변화하지 않는 본질, 곧 진리의 바탕 위에 서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진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배의 형식이 바뀔 수 있고, 목회의 형태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주의 화법이나 인상파나 야수파의 화법이라 하더라도 "빛"을 떠나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본질을 놓쳐서도 안됩니다. 이것이 변화의 시대를 맞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글쓴이: 윤동현 목사, 그린교회 CA
올린날: 2013년 1월 2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