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찾기 위해 히말라야로 떠난 한 젊은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몇 해 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봉을 오르다 실종된 등반탐험대의 대장이었습니다. 정상을 향한 새로운 루트를 찾다가 실종이 된 남편의 시신도 찾지 못하고, 결국 남편의 남겨진 유품 몇 가지와 그가 사라진 히말라야의 흙 만으로 장례를 마친 부인에게는 아직도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지인들에게 남편이 오르다 끝내 되돌아 오지 못한 길을 자기 스스로 되짚어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만류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듣지 못한 남편의 유지가 무언지, 그리고 홀로 남은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것을 묻기 위해 거대한 산에 갇혀 영면에 빠진 남편을 향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때론 말없이 자신을 남기고 떠난 빈 자리를 대해야 하는 상황을 접하게 됩니다. 갑작스런 떠남으로 인해 어떤 이는 당혹감 속에 마치 버려진 듯한 아픔을 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떻게 그 빈자리가 메워질 것인가 걱정을 먼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경우이든 분명한 사실은 떠난 빈자리가 남아있는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숙제로 남게 된다는 점입니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기에,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쳐온 것일까 절망스런 질문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제 그가 없는 이 삶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히말라야로 떠났던 젊은 부인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2000년 전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죄로 부패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는 떠나 보냈습니다. 육신의 몸으로는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남겨진 우리에게 주님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백지상태로 버려두지는 않았습니다. 성령을 보내어 떠난 빈자리의 아픔을 채워 위로해 주셨고, 부활의 생명을 통해 우리도 주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어가면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주님을 따라 살겠노라고 날마다 고백하며 결단하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께서 남긴 유지를 따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확신을 갖고 그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 걸까요? 중국 고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노스승이 하루는 제자들을 불러 놓고, 마당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만일 너희들의 상황이 지금 동그라미 안에 머물면 죽고, 밖으로 나와도 죽는다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한 제자가 "혹 금을 밟고 있으면 살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자, 스승은 "깊은 물 속에 항아리를 집어 넣으면, 항아리의 안과 밖 모두 물일 텐데, 항아리의 둘레를 밟고 서있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스승의 숙제를 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뒤, 어린 제자 하나가 나오더니 말없이 마당에 그려놓은 동그라미를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그제야 지켜보던 노스승이 만족해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도 행여 부질없는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자신의 신앙생활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마치 자신이 만든 혹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동그라미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는 믿음을 갖고 지냈던 것은 아니었습니까? 주님이 이 땅 위에 우리들이 그려놓은 수많은 동그라미들을 지우기 위해 값을 치르고 오셨음을 혹 잊은 것은 아니었습니까? 이 질문들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를 다시 한 번 재점검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권혁인 목사, 버클리한인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2년 10월 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