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보스톤 마라톤 폭파 사건으로 온 미국이 시끌벅적 했습니다. 사건이 있은 지 일주일도 안되어 범인 하나는 살해되고, 나머지 한 사람도 붙잡힌 것을 보면서 미국 수사력의 대단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맨 처음 사건을 뉴스에서 들었을 때, 한국에서 잘 쓰는 멘붕이라는 말이 생각 났습니다. 그야말로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는 경악스럼과 함께 암담함, 또한 범인에 대한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도 8살 난 아들을 잃고, 6살 난 딸아이마저 한쪽 다리를 잃게 된 된 피해자 가정에 대한 안스러움 등이 교차하며 많이 슬프고 혼잡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만에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나면서 마음이 더욱 찹찹해집니다. 무엇이 미국에서 자라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공부도 잘해서 명문대를 들어간 19살 난,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로 하여금 이와 같이 무시무시한 일을 꾸미고 실행하게 했는지, 언제 어떻게 세상을 향한 분노가 그리도 한맺히게 그 마음을 찌르며 들어 갔는지&ellipsis;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작년에 대학교에 간 저희 집 큰애가 19살이다 보니 더욱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그러면서 금요기도회 때 나눴던 그리샤라는 청년이 생각났습니다. 그리샤는 배돈자 선교사님의 바끌라노브까 교회의 청년으로 보스톤 폭탄범인 조하르 차르나예프가 태어난 체첸 지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진압군으로 참여했던 고려인 청년입니다. 그때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으로 힘들어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욱 간절히 그를 위해서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분쟁 지역 체첸이라는 곳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상처받은 두 젊은이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22살의 젊은 나이에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 자살했던 감리교 청년 전태일 열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또한 일제의 앞잡이 스티븐슨을 샌프란시스코 페리부두에서 저격 사살한 당시 상황 감리교회 교인이었던 장인환 열사도 생각 났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희랑 크게 다를 것 없는 이들이 참으로 많은 아픔을 품고, 뿜어내며 살아야 했던 세상인 것 같습니다.
보스톤 폭탄 테러가 있던 날 어느 목사님의 페북에 올라온 글에 보니 같은 날 이라크에서 20개의 폭탄 테러가 있었고, 전날에는 소말리아에서 폭탄으로 29명이 죽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누구라도 죽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노의 마음을 품게 하였는지,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지 마음이 참 아픕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아픔을 겪지 않고 살아서 감사하다고 하기에는, 시카고는 아직 안전하니 감사하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자꾸 듭니다. 그런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은 무성한 불안함 위에 말 하나라도 함부로 던지지 말고, 대신 차분하게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로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왠지 차분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 금요일 예배 때 "종북세력척결 안보위원회" 란 모임이 생겼다는 기사에 마음이 철렁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물론 "척결"해야 될 일도 있겠지만, "척결"이란 것은 거세게 없앤다는 것인데, 그것이 결국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전쟁의 위협으로 불안한 정국에는 "척결" 하겠다는 독한 마음보다는 기다려주고, 보듬어 안고, 어떻게 해서든지 함께 살아 보려고 "참아" 주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거나 기도해야 하는 이 때에, 하나님의 평강을 담을 수 있는 "차분한" 기도 소리들이 모여서 세상의 아픈 소리, 성난 소리들을 달래고,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봅니다. 샬롬!
글쓴이: 김태준 목사, 살렘연합감리교회 IL
올린날: 2013년 4월 22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