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조작으로 품종개량을 하는 것은 반기독교적인 행위인가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종묘회사에서 일하고 계시던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동물과 식물을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고 또 사람이 마음대로 이 창조질서를 어지럽히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자신은 종자개량 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혹시 내가 성경이 금하는 반기독교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신 적이 있다. 사실 레위기 19:19절에 보면 하나님이 품종개량을 금하시는 것 같은 내용이 나온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전통적으로 인류는 농업과 축산의 분야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종자를 만들어 양질의 수확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다. 그래서 농사 짓는 사람은 올해에 거둔 수확 중에서 가장 실한 종자를 골라서 내년을 준비하였고, 가축을 기르는 사람은 튼튼하고 새끼를 많이 낳는 닭이나 돼지를 씨암탉이나 종돈으로 사용함으로써 점점 개선되는 유전자를 통해 더 좋은 품종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였다. 이것이 전통적인 품종개량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부신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유전자 조작을 통한 품종개량을 많이 시도한다. 이전의 방법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도로서 일명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로 불리는 식물이나 동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유전자 조작 식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에게 큰 이익을 (특히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와이에서는 1990년대 말에 파파야를 병들게 하는 특정 바이러스 때문에 파파야 산업이 거의 소멸할 지경이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와이대학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개량된 파파야를 만들어내었다. 이것이 현재 유통되는 레인보우 파파야이다. 그밖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류에게 유익한 약품들이 많이 개발되었는데 예를 들어 B형 간염백신, 인슐린, 성장호르몬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인류는 품종개량을 통해 점점 편안한 삶을 개척해나갔고 경제나 보건 같은 영역에서 큰 유익을 얻었다. 그런데 과연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양심으로 이것을 거부해야 할까? 성경에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했으니 품종개량은 무조건 거부해야 할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올바른 성경해석 방법에 있다. 성경을 당시의 상황과 상관없이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 문자적 해석을 그대로 현대의 행동지침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문자에 담긴 그 내면의 의도, 즉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뜻을 읽어내서 그것을 현대의 옷을 입혀서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품종개량을 사탄에게서 온 독사과로 거부할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이 자연이성을 통해 주신 선물로 환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아버지가 소금가마니를 지고 개울을 건너라 하면 그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표면적 문자의 차원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버지가 소금을 운반해오라고 하면 반드시 그것을 등에 지고 개울을 건너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문자에 담긴 본뜻에 집중하는 사람은 이것이 소금에 대한 말이 아니라 효도에 대한 말이란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즉 자식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순종할 줄 아는 효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면 위에서 인용한 레위기의 명령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종자개량이나 품종개량을 해서는 안 되고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식품을 먹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명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본뜻에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 위의 명령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라는 의미, 즉 하나님 신앙과 다른 신앙을 섞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위의 구절은 품종개량의 이슈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현재 유대인들이 지키는 코셔음식법(Kosher)도 동일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레위기서에 보면 돼지고기나 낙지나 갑각류 같은 음식은 부정하기 때문에 먹어서도 안 되고 만져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현대에도 그런 것들을 먹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레위기의 음식법은 위의 종자를 섞지 말라는 명령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라는 의미가 있다. 매일 음식을 먹을 때 아무거나 먹지 말고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하신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명령 안에는, 하나님의 백성은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에 반드시 순수한 혈통과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한(깨끗한)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부정한 음식을 멀리하는 것처럼 부정한 사상과 종교를 멀리하라는 뜻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문자 안에 담긴 본뜻에 집중하기 때문에 구약의 음식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고, 같은 맥락에서 이종교배와 종자를 섞지 말라는 레위기의 명령도 품종개량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으로 불순한 것과 섞이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현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품종개량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기독교인들 중에 유전자 조작에 대해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유전자 조작은 사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림으로써 세상을 자기 권세아래 두는 핵심 도구가 되기 때문에 유전자를 다루는 생명공학은 그 자체로 현대판 적그리스도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런 주장을 펴는 이유는 유전자 조작을 통한 품종개량은 기존의 유전자에다가 인위적으로 다른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삭제함으로써 일반 자연생식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성질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창조물에 대한 성경의 기본 가르침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인간은 그것을 대신 다스리고 관리하는 역할을 위임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다스리고 관리하는 역할이 창조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인간의 창조적 과학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닮은 성질인 창조성을 부여하셨다. 그래서 인류의 시초때부터 예술이 있는 것이고 과학기술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창조성과 관련하여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는가? 기독교의 중심인 사랑의 원리로써 이 문제에 답할 수 있다. 인간의 창조성이 사랑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3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병충해에 강한 식물/동물을 개량한다든지 혹은 치명적인 질병을 막는 백신을 만든다면 이것은 사랑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어느 특정집단에게 경제적인 부를 가져다 주기 위해, 궁극적으로 인류나 생태계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면서까지 유전자 조작을 한다면 이는 반기독교적인 행위로써 금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유전자조작을 통한 품종개량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사랑하고 그 생명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면 성서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홍삼열 목사, 산타클라라한인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3년 9월 3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