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과 삶, 너무 멀지 않기를

보통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를 알고 싶을 때, 어떤 책들이 잘 팔리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질 때, 자연히 자주 그리고 많이 보는 쪽이 도서 쪽 사이트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기 위해선 고전과 더불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며,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선 백성들이 많이 읽는 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잠시 머물 때도, 되도록 꼭 들리는 곳이 광화문 교보문고입니다. 되도록 약속을 그 곳으로 잡아서라도, 잠시 배부르고 싶은 곳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알게 되는 또 다른 루트가 있다면, 그것은 방송매체일 것입니다. 당연히 뉴스나 시사 다큐는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정보매체가 있습니다. 바로 코미디 프로그램입니다. 코미디 프로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각을 가장 쉽게 그리고 보다 해학적으로 알 수 있는 길입니다. 얼핏 책과 코미디는 서로 다른 길 같지만, 엄밀하게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눈으로 읽고, 코미디는 눈으로 보면서 둘 다 가슴에 새기는, 진지함과 치열함 그리고 공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 도서의 경우, 가장 많이 팔린 책 열 권 중에는 에세이가 5권, 자기계발서가 2권, 소설이 2권, 영어학습서가 1권이라고 합니다. 즉, 혜민 스님이 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베스트셀러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여전히 인기몰이를. 그리고 김 교수의 새 책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와 이병률 시인의 여행산문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상위권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근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열 권 중 네 권이 멈추고 토닥이고 위로하는, 요즘 유행어로 '힐링' 컨셉인 것입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인 듯싶습니다. 그것이 경제이든, 정치이든 아니 개인의 문제이든 이래저래 삶에 지친 백성들에게 그래도 해학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개그맨들의 입담을 통해 사람들은 "괜찮아, 괜찮아!" "인생이 다 그런 거지"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개그 콘서트'(일명 개콘)에서 유행하는 말들이 온 나라에 장난이 아닐 정도로 퍼지고 있어, 개콘을 안 보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개콘 안 보면 '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책의 다른 쪽에서는 힐링이 주제가 아닌, 사뭇 결이 다른 주제가 눈에 뜁니다. 즉, 정보와 지식이 많은 사람의 지도와 조언으로 자신의 잠재력과 실력을 함양하는 소위, '멘토링' 컨셉 도서입니다. 말하자면 '휴식 없는 도전' 쪽으로, '안철수의 생각', 협상 기술을 가르치는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현자(賢者) 1000명 지혜를 담은 칼 필레머의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등이 그 예입니다. 이 같은 반향은 누군가 자신을 만져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더불어 누군가를 만져주고 싶어하는 소원일 것입니다.

TV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이 풍진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얻은 크고 작은 상처에 '치유'를 바라는 한편, 상처를 준 세상에 당당히 복수(?)할 책략과 지혜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성공'이야기를 그린 '광고천재 이태백,' '마의'... 현실적인 기술을 연마해가며 불친절한 세계를 보란 듯 헤쳐나가려 하지만 그만 쓰러져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즉, 힐링과 멘토링, 휴식과 학습, 치유와 도전.... 마치 일견 양극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키워드가 나란한 것을 보며, 이것이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 옛날부터 세상 이치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는 않는 법, "장자(莊子)가 벗을 찾아 산길을 가다가 아름드리나무 밑의 나무꾼을 보았다. 장자는 왜 나무를 베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무꾼은 "쓸 데가 없소"라고 답했다. 장자는 "쓸모 없는 나무는 오래 살겠구려" 했다. 벗이 장자를 반기어 벙어리 거위를 삶아 대접했다. 제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나무는 쓸모 없어 살고, 거위는 쓸모 없어 죽는데, 선생은 어느 쪽이십니까?" 장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쓸모 있음과 없음 그 사이. 용이었다가 뱀이었다가(一龍一蛇) 오르락내리락(一上一下) 하련다."

대학 '중용론'에 실린 장자의 처세술에 관한 대화이지만, 이것은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에 큰 지혜를 주기에 충분한 듯 합니다. '일용일사'(一龍一蛇), 우리가 믿음이 있다 해도 우리의 일상에 불확실성과 불안이 일거에 사라지지는 않는 법, 결국 유능한 선장은 파도를 즐기는 법, 인생의 희비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도 책과 코미디 사이에서 '인생 살아가기'를 가슴에 새길 수 있다면, 일상일하(一上一下), 조금씩이라도 희망은 올라가고 그렇게 절망은 내려가지 않겠는가 하여, 믿음은 우리의 인생 살아가기에서 그렇게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문득,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이 땅이 아닌가 하여, 성경을 보다가 혜민스님의 책을 기웃거려보고,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을 보다가 '개콘' 때문에 크게 한 번 웃고... 거룩은 현실과 붙어 다니는 법, 부디 거룩과 현실의 거리에 너무 자책하지 마시길.

글쓴이: 장찬영 목사, 남부플로리다한인연합감리교회 FL
올린날: 2013년 3월 2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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