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거의 한 달 동안 고국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국가적 혼돈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아직도 침몰한 배 안에 있을 시신 수습 작업이 계속되고 있어 애타게 기다리는 희생자 가족들은 지쳐 있고 수습 작업을 하는 이들도 힘겨워 하는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 거의 모든 언론 보도는 이 사건에 대한 속보와 상세한 정보를 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고, 웬만한 오락 프로그램들은 자진해서 방영을 취소하고 사고를 당한 가족들의 슬픔에 간접적이나마 동참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고가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사고가 발생한 과정과, 사고 직후부터 사고 수습에 대한 절차와 방법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누구라 할 것 없이 마음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의 원인과 발생, 그리고 그 수습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보도와 정보를 통해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사건이 일어나고 일어난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이유는 한마디로 지켜야 할 규칙(기준)을 지키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배를 운행하는 회사가 안전한 선박 운항 안전 규칙을 지키기 않았고, 사고 예방 조치나 검사 규칙, 비상 대책 규정 또한 지키지 않았으며, 배에 선적할 수 있는 화물의 규정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항해의 책임을 맡은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비상시 해야 할 책임과 의무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게다가 사고 선박으로부터 신고를 받은 당국의 대처도 그 규범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또한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해당 정부 부처들의 초등 대응에서부터 전반적인 사고 수습 과정이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규범에서 벗어났다는데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합니다.
회사는 회사가 지켜야할 규범이 있고, 선장이나 선원은 그들이 따라야 할 규칙이 엄연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한 규범과 원칙을 따르지 않았고, 사고를 수습하는 정부 당국이나 해당 부처도 근무 수칙이 분명히 있지만 각자의 ‘이익’을 위해 규칙을 따르지 않음으로 사건의 발생부터 수습까지 총체적으로 문제가 야기된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 자체도 문제이지만 사고 수습과 관련된 이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분노가 사건으로 인해 빚어진 슬픔보다 더 크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이들에 대한 직무 유기나 책임 회피에 대해 엄정한 조사와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면서 이것은 비단 선박회사나 정부 당국의 잘못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규정을 알지만 위험한 항해를 하는 것은 비단 세월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드리면 ‘좀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네 사회를 조금만 눈여겨보면 딱히 ‘그렇지 않다’고 반문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사고로 많은 학생들이 희생을 당했는데,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보면 세월호의 현실과 그리 다르지가 않습니다. 참된 교육이 무엇이고, 어떻게 학교를 운영하며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원칙이 있지만 오늘의 학교 현실은 그 원칙에서 이미 멀리 벗어나 있습니다. 건강하게 자라나야할 나이의 청소년들이 과중한 경쟁적, 아니 생존적 공부를 해야 하기에 이른 새벽에 등교해서 늦은 밤 거의 자정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고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두가 알지만 학교는 여전히 위험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이고, 어떤 신앙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지 모두가 다 알면서도 교회의 본질이나 규범을 따르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나름의 ‘이익’을 위하여 물량주의, 인본주의를 불사해서라도 성장과 성공을 위한 경쟁과 비교에 익숙해 버린 오늘의 교회 현실도 세월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만약 이번 세월호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다른 여느 날 그랬던 것처럼 제주 왕복 항해를 무사히 마쳤다면(그러기를 바라고, 또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고 했을 테지만) 적재량을 초과해서 선적한 회사는 더 많은 ‘이익’을 낸 항해라고 좋아했을 것이고, 그런 항해를 잘 한 선장과 선원들에게도 ‘이익’이 주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이익’에 대한 유혹 때문에 지금도 위험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고는 안날 거라고 기대하며 아니 그렇게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