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에 갔더니 설교를 부탁하는 선후배 동료 목사님들이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 달 내내 설교만 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몸도 성치 않아서 치료 차 한국에 나왔는데, 그 몰골로 남의 강단에 선다는 것이 너무 철부지 같아 보였습니다. 잘 하지도 못하는 설교로 다른 강단을 어지럽히지 말고 조용히 자숙하면서 쉬다가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선배 목사님 한 분의 부탁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 좀 튕기고 웬만하면 하지? 내일 당장 죽어도 설교할 수 있으면,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 목사의 사명이고 축복일 텐데, 이제 그만 빼고 해!"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데 이 시기가 지나면 과연 누가 나를 이토록 강렬하게 자기 강단에 세우려고 채근하겠습니까? 너무도 감사하고 감동스러워서 흔쾌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처음에는 큰 은혜를 받았다고 제 손을 잡고 감사해 하다가 나중에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담임목사님의 흉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어색한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잠시 지나가면서 부담 없이 말씀을 전한 "나그네 목사"와 자기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희비애락을 나누는 담임목사를 비교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습니까? 더욱이 그 목사님의 훌륭한 인품과 열정이 아니었다면, 그 교회에 가서 설교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뒷맛이 씁쓸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어리석어서 항상 옆에 있으면 그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자식도, 벗들도, 그리고 피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귀한 일터도 별볼일 없는 것처럼 가볍게 치부해 버립니다. 중국 진나라에 "왕희지"라는 최고의 명필이 있었습니다. 그의 서체에 매료된 사람들이 앞 다투어 그의 필체를 배우려고 사방에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유익"이라는 관리도 왕희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명필이었습니다. 붓글씨를 아는 사람들 중에는 "왕희지"보다 오히려 "유익"을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작 "유익"의 자녀들과 가솔들은 유익보다도 왕희지의 서체를 배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유익은 답답한 마음으로 "집 안의 닭은 쳐다보지도 않고, 들판의 꿩 만 귀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가계야치"(家鷄野雉)라는 말을 하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남의 손에 있는 "보물"은 내 손 안에 있는 "고물"만도 못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의사로부터 "이제 다시는 커피를 마셔서는 안 된다"는 기가 막힌 통보를 틀었습니다. 커피라면 사족을 못 쓰던 "커피광"인 제가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커피를 소중하게 마실 것을"하는 후회가 간절했습니다. 커피는 미국에서 죽을 때까지 마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어찌 소중한 것이 커피만 있겠습니까? "사람"의 가치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가계야치"는 내게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바로 어리석은 나를 위해 생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쓴이: 김세환 목사, LA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2년 8월 14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