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갖는 것이 행복을 보증해 주지는 않습니다. 풍요 속에서 오히려 처절한 빈곤을 느끼기도 하고, 반대로 빈곤 속에서 짜릿한 포만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군에 입대해서 처음으로 받았던 보름 동안의 첫 휴가는 하루하루가 달콤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말기암 환자처럼 사무치도록 애절한 시간들을 아낌없이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후에 복학을 준비하며 보냈던 널널한 시간들은 오히려 지루함과 권태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시간이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데서 누리는 풍족함보다 부족한 가운데서 경험하는 달콤함이 훨씬 더 많은 기쁨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절대적인 빈곤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면서 느끼는 상대적인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학급에서 항상 꼴찌 하는 학생은 절대로 자살하지 않습니다. 전교 일등을 하다가 슬럼프에 빠진 학생이 옥상에서 뛰어내립니다. 가진 것이 건강 밖에 없는 사람은 몸뚱이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남의 나라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 그리고 차별과 무시를 당해본 이민자들만이 "나라"의 소중함을 절감합니다. 그래서 외국에 나오면 모두 다 애국자들이 됩니다.
"석유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름이 펑펑 나오는 산유국들이 그렇지 못한 다른 나라들보다 더 못 산다는 주장입니다. 하수도를 고치다가 삽질을 잘못하면 언제든지 유전이 터질 수 있는 돈 덩어리 나라들인데, 아쉬운 것이 없고 절박한 것이 없다 보니 개발이나 발전이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공부도 안하고, 노력도 없습니다. 자원이 아무것도 없는 나라들보다도 더 못삽니다. 가진 것이 쥐뿔도 없지만, 악착같은 근성으로 싸우고 노력해서 세계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인들을 보면 "없는 것이 축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됩니다. 미국 역사 속에서 참으로 신기한 것은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시골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 중 대다수가 불운한 환경과 조건들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결핍과 빈곤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라는 말은 잘난 사람들이 폼 잡으려고 한 말이 아니라, 삶의 진리를 담고 있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제가 예전에 살던 캔자스 위치타에는 변변한 한식 식당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두 번씩 인근 대도시였던 텍사스를 방문하게 되면, 어김없이 한인들이 경영하는 음식점을 들렀습니다. 특별히, 그곳에서 맛보는 "칡냉면"은 "영혼의 별식"이었습니다. 그 놈 한 그릇을 먹으면 적어도 반년은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한인들이 최고로 많이 모여 사는 로스엔젤레스로 이사를 온 뒤로는 단 한 번도 칡냉면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분명히 이곳에 더 다양하고 화려한 칡냉면 음식점들이 더 많이 존재하는데도 말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그때 그 맛을 재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있다고 해서, 더 많이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가진 것이 오히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만드는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왜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이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인 "존재"에서 나온다고 했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소유 지향을 통해 가치와 행복을 찾기보다는 우리 내면의 삶을 다듬고 가꾸는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달리 사는 지혜를 배워야 할 때입니다"
글쓴이: 김세환 목사, LA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3년 6월 6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