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 교회 이야기』란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 하나입니다. 어떤 여자 집사 한 분이 교회에 전 재산을 기증하겠다고 담임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 사는 과부입니다. 평소 하나님께 전 재산을 드리기로 서원했던 것을 실천에 옮기고자 수년 전에 사놓은 상가의 등기 권리증을 가지고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상가는 시가로 1억 원 정도 하는 건물인데 당시 보증금 2500만원, 월세 50만 원에 임대 중이었습니다. 그 여자 집사는 보증금으로 전세방을 얻어 생활해 오던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재산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자'는 결심에 끌려 그 돈마저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담임목사는 교회 임원들과 이에 대해 의논을 합니다. 그리고는 전 재산을 바친 그 집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집사님, 집사님이 하나님께 드린 전 재산을 교회는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매 달 재정 잔고를 100만원만 남기고 다 집행하는 것 아시지요? 그래서 몇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쌓아두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서 집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집사가 헌금한 전 재산을 다시 돌려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집사님, 교회는 분명 집사님의 전 재산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 상가는 어제의 상가가 아니고, 오늘 이후 이 상가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집사님께 주신 선물입니다."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는 집사님의 생활비가 되어야 하고, 필요하면 팔아서 아이들 결혼시키는 데도 쓰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려다 되돌려 받은 상가가 아닙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하나님 제단에 바치려는 여인의 믿음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셈법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 재산을 드리고자 한 집사님의 마음도 그렇고 받은 그 재산을 다시 하나님의 선물로 되돌려 준 목사와 교회의 결단 또한 참 부유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성서에도 나옵니다. 성전에 두 렙돈의 전 재산을 바친 가난한 과부의 부유한 마음에 대한 말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한 부류는 헌금함에 많은 돈을 넣는 부자이고, 다른 하나는 가진 것이 별로 없으나 그 모두를 헌금한 가난한 과부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과부, 그리고 많은 액수의 헌금과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의 헌금. 이는 어디까지나 세상의 셈법에서나 쓰이는 묘사 방식입니다.
예수께서 보신 것은 그런 세상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지는 않으나 그저 그들의 마음 만을 보셨던 겁니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인가 아니면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는 더 큰 마음인가. 그래서 세상의 셈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마음의 넓이가 곧 주님에게는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산사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란 것이 있습니다. 풍경이 흔들릴 때마다 들리는 은은한 소리가 때론 우리의 메마른 마음에 울림이 되어, 평안과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풍경이 내는 소리,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분명 종처럼 생긴 풍경이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공명할 수 있는 공간과 부딪쳐 울릴 수 있는 추가 마찰음을 내면서 은은한 소리가 나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만을 열거한 것일 뿐입니다.
보이지 않으나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면 아무리 외형상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해도 결코 풍경은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3장은 그 바람을 다른 말로 성령 혹은 우리의 마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보여준 가진 모든 것을 제단 앞에 내어 놓을 수 있는 헌신. 그것이 우리 눈에 드러나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의 행동이 그래서가 아닙니다. 바로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보이지 않는 바람과 같은 그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유한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셈법에 가장 으뜸되는 상급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드러나는 것을 좇아 살아가는 각박한 시대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전하는 풍경의 은은한 소리를 기대한다면, 그것 또한 저 만의 욕심일까요?
글쓴이: 권혁인 목사, 버클리한인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2년 11월 12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